메신저·화상회의·AI·메타버스 등 기술 사무실 등장
비대면이 채울 수 없는 '관계·감정교류'…생산성에 영향
"우리는 기술적으로 역사상 가장 연결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외로움을 느끼는 비율은 1980년대 이후 두 배로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4년 전 먼저 경고가 나왔다. 의사 출신의 미국 보건 수장인 비베크 머시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PHSCC) 의무총감은 2017년 9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기고문을 통해 이렇게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외로움 전염병(Loneliness epidemic)'이라고 불렀다. "사회적으로 얼마나 연결됐는가 하는 건 (하루 중) 시간을 가장 많이 쓰는 기관과 장소에 주로 영향을 받는다. 직장도 포함된다. 재택근무와 같은 새로운 근무 형태가 유연성을 만들어주지만, 관계 맺을 기회를 줄인다"고 그는 강조했다.
6년 만에 또다시 경고음이 울렸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또다시 PHSCC 의무총감을 맡게 된 그가 지난달 초 80쪽이 넘는 '외로움·고립이라는 전염병 2023(Our Epidemic of Loneliness and Isolation 2023)' 보고서를 공개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전 세계인이 일상에서 단절을 경험한 지금 외로움은 흡연이나 비만처럼 공중보건 위협의 하나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단절로 인한 타격은 마치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우려했다.
◆ 코로나 경험이 안겨준 고민…디지털 기술 발전은 'ing'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마비되자 사람을 연결한 건 기술이었다. 집이라는 개인 사무실 안에서 인터넷망을 활용해 노트북으로 동료를 만났고 카메라에 비친 그들과 성능 좋은 마이크, 스피커로 대화했다. 24시간 하루 내내 별다른 제약 없이 업무 자료도 이메일과 메신저로 수월하게 전달했다. 비행기를 타고 장시간 이동하는 출장 없이도 해외에 있는 동료와 화상으로 회의가 가능했다. 재택·원격근무로도 충분히 동료들과 관계를 맺고 상호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각종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소통과 공감을 원하는 글과 사진이 쏟아졌다. '집에서 일하다 혼자 밥 먹는 게 외로워 올린다'며 집에서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 사진을 공개하고, '내가 꾸민 홈 오피스를 자랑한다'며 새로 산 모니터가 있는 책상의 모습을 공유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여파로 가족과 친구마저 만날 수 없었던 직장인들은 대면 접촉 없는 근무 환경에 고립감과 피로함을 호소했다.
온라인 메신저, 화상 회의 기술로 소통은 문제없이 이뤄졌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모두가 가상 공간에서 항상 연결돼 있었으나 현실은 각각 분리된 공간에 있었고, 감정 교류는 쉽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고 불필요한 관계와의 단절이라는 장점도 있었다. 그럼에도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대인 관계, 조직 간 소통을 향한 의문은 커졌다.
코로나19 초기 재택근무를 지속하겠다고 했던 마크 저커버그 메타플랫폼 최고경영자(CEO)가 올해 "대면으로 신뢰를 쌓는 것이 (원격으로 하는 것보다) 쉽고 그런 관계들이 더 효과적으로 일하도록 도와준다"고 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인터넷, 컴퓨터를 넘어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등 다양한 기술이 사무실로 속속 진입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이 마주 보지 않고도 함께 일하는 세상에 한발짝 더 다가서는 느낌이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직장인의 외로움을 가중할까?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기술의 이점을 활용하면서 직장 내에서 관계를 맺고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 세계 기업과 사무실의 깊은 고민과 섬세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 '현대 전염병' 외로움, 생산성에 직격타
기업 입장에서 직원이 느끼는 외로움은 그야말로 '독'이다.
조직 문화 등을 연구한 시걸 바르세이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과거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외로움이 두 가지 측면에서 기업 성과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회사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직원은 열심히 일할 동기가 떨어져 일에 신경을 덜 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좋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했다. 또 이미 외롭다고 느끼고 있는 상황 자체가 동료들과 추가로 소통하는 과정을 방해한다고 분석했다. 동료들을 신뢰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보 교류도 자유롭게 이뤄지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직원들의 관계가 좋을수록 높은 성과를 얻는다는 건 이미 많은 연구로 증명됐다. 직원 간의 유대관계가 좋으면 그만큼 업무에 대한 교류가 활발해지고 직장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높아진다. 동료, 상사 등과의 연결성이 높다고 느낄 때 연간 매출 증가율이 7.5% 오른다는 보고서(액센추어)가 나왔는가 하면, 동료들과 네트워킹이 잘 돼 있다고 느낄수록 업무 참여도가 1.5배 증가한다는 분석(매켄지)도 있다.
여론조사업체 갤럽이 직원의 업무 참여 정도를 연구하기 위해 진행하는 설문 조사 항목으로 '직장에 가장 친한 친구가 있냐'는 질문을 포함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짐 하터 갤럽 직장 및 웰빙 연구원은 "원격·하이브리드 근무가 급증한 이후 직장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갖는 것이 훨씬 중요해졌다"며 "데이터상 일반적으로 젊은 사람들일수록 직장으로부터 연결고리가 더욱 약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 얼굴 본다고 관계 쌓이는 건 아니에요…'진정한 연결' 중요
그렇다면 기술이 메우지 못한 '관계 형성'과 '신뢰 구축'을 위해 사무실 복귀는 필수일까?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 시대에 직원들이 한곳에 모여 협력하고 시너지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많은 CEO는 외쳤다. 또 재택근무를 축소하면서 도입한 하이브리드 근무는 하나의 해결책으로 부상했다. 기술을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아 직원들이 협업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볼 부분은 머시 의무총감의 지적이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조차 의미 있는 연결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동료들로 가득한 사무실, 심지어 열린 공간에 앉아있지만, 모두가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업체 액센추어는 지난해 미국, 영국, 중국 등 12개국에서 1100명의 임원과 5000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동료들과 잘 연결돼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 10명 중 4명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질문에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자는 36%, 재택근무자는 22%만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보다 오히려 재택근무를 할 때 더 잘 연결돼 있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는 의미다. 한 공간에 단순히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관계를 맺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기술 변화가 사무실의 관계를 바꿔놓듯 재택근무를 주 근무 체제로 도입한 에어비앤비의 경우 분기별로 일주일 정도는 대면 사교 행사를 진행하도록 했다. 일부 회사에서는 회식비 등을 지원하며 직원들이 서로 관계를 맺도록 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엘린 슉 액센추어 최고리더십 및 인사책임자(CLHO)는 "문화는 공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유대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업무와 관련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뿐 아니라 삶에서도 새로운 세계 속에 있다. 어떻게 서로 연결돼야 할지에 대해 기본적인 생각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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