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쑨원대 연구팀
'인도시아닌 그린' 해독 효과 밝혀내
알광대버섯(Amanita phalloides)은 '독버섯 중의 독버섯'이다. 이 독버섯을 먹고 죽은 왕들도 많아 '왕들의 살해자(killer of kings)'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발달한 유전자 가위 기술을 통해 이 버섯의 치명적인 독소에 대한 해독제를 개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 광저우 소재 쑨원대 연구팀은 16일(현지 시각) 이같은 내용의 논문을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했다. 최대 15cm까지 자라는 이 버섯은 옅은 황갈색 또는 황록색을 띠며, 간혹 복용 후 운 좋아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맛도 매우 좋다. 하지만 이 버섯에 포함된 독소(아마니타 톡신)는 구토, 발작, 심각한 간 손상은 물론 사망할 수도 있다. 로마의 클라우디우스 황제, 신성로마제국의 카를로스 6세 등이 이 독버섯을 먹었다가 사망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요즘에도 독성 버섯을 먹고 매년 수백명이 숨지는데, 이 중 90%가 이 버섯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치명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여태까지 이 독버섯이 어떻게 그런 독성을 발휘하는지에 대해 정확한 기전을 규명해내지 못한 상태였다. 실수로 복용한 환자들에 대한 치료도 토해내도록 하고 상태를 관리하는 정도였지 다른 독과 달리 해독 치료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쑨원대 연구팀은 최근 '인도시아닌 그린( indocyanine green)'이라는 물질이 해독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버섯의 독소인 'α-아마니틴'이 세포에 작용하는 생물학적 경로를 차단하는 원리다. 몇 년 전 해파리독의 해독제를 찾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을 응용해서 찾아낼 수 있었다. 연구팀은 우선 최신 유전자가위 기술인 '크리스퍼-카스9'을 활용해 각각 다른 유전자 변이를 가진 인간 세포군을 만들었다. 이후 α-아마니틴에 노출시켜 어떤 변이를 가진 인간 세포가 살아남는지를 관찰했다. 이 결과 STT3B라는 이름의 효소가 결핍된 인간 세포가 α-아마니틴이 투여돼도 생존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STT3B는 단백질에 당 분자를 첨가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를 방해하면 α-아마니틴이 세포에 침입하는 것을 막고 독소가 인체에 작용해 치명적 병증을 일으키는 것을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연구팀은 이후 STT3B의 활동을 차단할 수 있는 화학 물질을 찾기 위해 3200종의 화학 물질을 검색했으며, 이 가운데 인도시아닌 그린이 최종 선택됐다. 이 물질은 당초 1950년대 필름 회사인 코닥이 의료 사진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 염료의 일종이다. 정맥에 주사해 간기능검사를 할 때 쓰인다. 만성간염이나 간경화(liver cirrhosis) 진단에 유용하다.
연구팀은 동물실험을 통해 실제 효과도 확인했다. 인도시아닌 그린을 투여한 생쥐의 경우 α-아마니틴에 노출됐음에도 50%만 사망해 그렇지 않은 대조군(90%)에 비해 해독 효과가 현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연구팀은 이 버섯을 먹은 지 4시간 뒤에 인도시아닌 그린을 투여했는데, 사람의 경우 복용 후에도 하루 내지 이틀 뒤에나 증세를 나타내 병원을 찾는 등 시차가 있다는 점은 추후 규명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이 물질은 이미 미국 식품의약청(FDA)이나 유럽의약품청(EMMA) 등에 의해 이미지 촬영용 의약품으로 승인받은 상태다. 일정량을 인체에 투여해도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쑨원대 연구팀은 빠른 시일 내 임상 실험을 거쳐 약품화를 희망하고 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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