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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섭의 금융라이트]기축통화국이 아닌 죄…"외인 자금유출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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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자금유출 위험 시달리는 신흥국
채권시장 발전에도 자금유출 가능성 여전
한국도 신흥국과 비슷한 유출위험 있어
"환 위험 관리예산의 상시편성 검토해야"

[송승섭의 금융라이트]기축통화국이 아닌 죄…"외인 자금유출 주의" 사진=아시아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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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성경 창세기에 처음 등장하는 말입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으면서 생긴 죄를 뜻하죠. 기독교 사상에서는 하나님이 금지한 행동을 했으니 인간은 본래 죄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봅니다. 그런데 경제학에서도 원죄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대상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들이죠. 왜 경제학에서는 비(非) 기축통화국에 원죄가 있다고 지적할까요?


비기축통화국의 원죄는 경제학 중에서도 국제금융 분야에서 쓰는 용어입니다.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겪게 되는 문제를 의미하죠. 특히 개발도상국과 같은 신흥국의 리스크를 지적할 때 사용하는데요. 글로벌 금융상황이 나빠지면 기축통화국이 아닌 신흥국에서는 외국인 투자자금이 급격하게 유출될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배리 아이켄그린과 리카르도 하우스만이 1999년 연구에서 처음 언급했습니다.


기축통화 없어 서러운 신흥국…외인 자금 빠질까 전전긍긍
[송승섭의 금융라이트]기축통화국이 아닌 죄…"외인 자금유출 주의" 사우디아라비아, 헝가리, 루마니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멕시코 등 신흥국 14개국의 올 초 기준 국채발행량.

이들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신흥국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원합니다. 그러려면 자금력이 강한 외국인 자금을 유치할 수 있어야 하죠. 이를 위해 개발도상국은 자국의 화폐로 표시된 채권을 많이 발행하려 합니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응은 싸늘한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지 못하는 나라의 화폐로 채권에 투자하지 않잖아요?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은 필요한데 자국화폐로 표시된 채권발행이 어렵다 보니 외채에 의존하게 됩니다. 달러로 빚을 진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기간이 아주 짧은 단기외채들로요. 물론 경제상황이 정상적일 때 단기외채는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채권 만기가 다가와도 보통 기한을 연장해주니까요. 문제는 불경기가 닥쳤을 때입니다. 국제금융 여건이 악화하면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입한 달러를 회수해버립니다. 환율이 치솟으면 외채부담이 커지고요.


원죄를 없앨 방법은 없을까요? 언뜻 생각하면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자국화폐 채권시장을 발전시키면 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언을 따라 경제체질을 개선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투자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불합리한 규제를 혁파하고요. 그럼 다소 리스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 성장가능성을 보고 채권에 돈을 대는 투자자가 늘어나겠죠.


채권시장 발전해도 신흥국 '원죄'는 그대로
[송승섭의 금융라이트]기축통화국이 아닌 죄…"외인 자금유출 주의" 배리 아이켄그린과 리카르도 하우스만

그런데 최근 경제학자들이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연구결과를 내놨습니다. 아이켄그린과 하우스만 등은 지난해 ‘원죄의 지속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신흥국들도 거시경제정책 역량이 쌓이면서 각종 경제지표가 개선됐고 자국통화표시 채권시장도 발전했다는 게 골자였죠. 그러나 2013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긴축기조에 들어서자 다시 채권시장이 퇴행하거나 발전이 정체됐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멕시코 은행 총재였던 2019년 아구스틴 카스튼스와 신현송 프린스턴대학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했는데요. 자국통화표시 채권시장이 발전하면서 외국인들이 많이 유입됐고 외채부담이 줄어든 것은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단 외국인 투자자들이 달러가 아닌 외국화폐로 투자를 한 만큼 환율변동 위험에 노출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만약 환율이 급격하게 변동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돈을 확 빼버릴 수 있다는 거죠. 두 경제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원죄의 귀환’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신흥국이 채권시장을 발전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더니, 오히려 돈을 확 빼버릴 위험이 여전히 큰 거죠.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경제학자들은 실제 사례도 살펴봤습니다. 전 세계 경기가 급변했던 코로나19 시기를 관찰해봤더니, 예상했던 부작용들이 속속 드러났죠. 미국인 투자자들의 자료를 뜯어보면 환율이 오르자 신흥국 화폐로 표시된 채권을 팔아치우는 경향이 관측됐습니다. 코로나19 충격이 처음 시작됐던 2020년 1분기에는 자국표시통화 신흥국 채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200억달러나 급감했고요.


"韓 안심 못해, 환위험 관리예산 상시편성 검토해야"
[송승섭의 금융라이트]기축통화국이 아닌 죄…"외인 자금유출 주의" 지난 12일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한국에도 같은 원죄가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경제 대국이지만, 기축통화국이 아닌데다 분류상 신흥국에 속하거든요. 특히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은 대외적인 요인에 취약한 편이고 외환시장이 ‘투기꾼들의 놀이터’가 돼왔다는 비판도 있었죠.


전문가들은 지금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환율이 급등할 위험이 높진 않지만, 한국과 미국 간 금리가 역대급으로 벌어졌고, 시장예측까지 어려운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이 일시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송민기 한국금융연구원(KIF) 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원화표시 채권시장 발전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가 환위험을 부담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하반기 환율 변동성 확대로 어려움을 겪었다면 환위험 관리예산의 상시적 편성을 검토하는 등 위험인식의 전환과 관리체계 정비노력이 요구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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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위 기사는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브리프 32권 09호에 수록된 ‘환율의 예측 불가능성과 비기축통화 원죄의 귀환(송민기 연구위원)’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편집자주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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