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완정, 연기 공백기에 맞닥뜨린 불안감 걷기로 극복한 사연
계단오르기 운동효과 널리 알리고 건강한 삶 나누고 싶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계단오르기를 시작한 거예요. 운동화 신고 현관문만 나서면 되니 돈이 들지 않고, 땀나고 얼굴 빨개져도 남들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 년 365일 할 수 있어요."
경력 38년차 배우이자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를 이끄는 탤런트 최완정(55). 가수로, 사업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에겐 '대한계단오르기걷기협회장'이라는 명함이 한 장 더 있다. 계단오르기로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정신적 건강까지 회복한 뒤 이제 계단오르기를 전국민에게 널리 알려 건강한 삶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포부에서 시작한 일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스트레스, 아파트 계단 오르며 해소
최완정은 '여인천하', '왕과 나', '우아한 모녀' 등 다양한 작품에서 조연으로 활약하며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려왔다. 2012부터 2018년 사이에는 드라마를 일 년에 4편씩 찍으면서 '아침 드라마계의 김태희' '일일 드라마계의 공무원'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바쁘게 살았다. 그는 "워낙 불규칙한 연예계 생활이기 때문에 일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건 고된 만큼 행복한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차기 드라마 출연이 무산되고 예상치 못한 공백기를 겪으면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다. 항상 작품과 작품 사이에 쉼 없이 계속 일을 해왔던 터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극심한 불면증이 왔다. "하루 한 시간도 못 자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지고, 몸은 순환이 안 되는데 카페인으로 버티려다 보니 폭식으로 이어져 체중이 순식간에 불어났어요. 고층 아파트에 살았는데, 우울감으로 매일 떨어지는 상상을 하고 환청까지 들리더라고요. 어느 날 거울을 보니 얼굴도, 몸도 여배우로서는 한심한 모습인 거에요."
겨우 용기를 내 동네 스포츠센터에 나갔지만 관리 안 된 연예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수군거림이 느껴졌다. 딸 앞에서 이대로 무너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 모자를 눌러 쓰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쉬어가면서 20층까지 오르는데 처음엔 40분 넘게 걸렸다. 그래도 일단 한번 올라보니 스스로도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첫날은 한 번, 이튿날은 두 번, 그렇게 보름쯤 계단을 오르다 보니 몸이 지쳐 저녁 10시가 되기도 전에 쓰려져 잠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잠을 잘 자니까 화가 가득 찼던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드라마 편성이 어긋나서 원망했던 PD도 이해가 되고, 땀을 쫙 흘리니까 피부도 좋아지더라고요. 데뷔했을 때부터 바로 어제까지 지내왔던 시간을 되돌아 보니 많은 일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나고, 또 한편으론 내가 죽을 때까지 배우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했는데 과연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며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어요." 보통은 아파트 20층을 다섯 번씩(100층), 많을 땐 하루 열 번씩(200층)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르곤 했다.
체중감량에 근육단련까지…단숨에 '머슬퀸' 등극
5~6개월 계단오르기를 하다 보니 체중이 10㎏이나 빠졌다. 확 달라진 외모에 오고 가며 만나는 이웃들이 관심을 보였다. 누군가 보디빌더 대회에 나가보라며 부추기는 통에 헬스 트레이너를 찾아갔는데, 그간 계단을 오른 덕분에 다리가 탄탄하게 단련됐다고 칭찬을 들었다. 계단오르기는 유산소 운동인 동시에 몸 구석구석 작은 근육들까지 자극해 탄력과 바디라인을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타고난 키와 연기로 다져진 표정까지 더해져 처음 도전한 피트니스 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고, 이후 좀 더 훈련을 거쳐 2019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머슬 앤 모델 아시아 챔피언십'에선 3관왕을 수상했다. 중년 이후 흔하게 나타나는 콜레스테롤이나 고혈압, 당뇨 같은 지병도 그에겐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수상 소식이 알려지면서 최완정은 '아침마당', '좋은아침' 등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건강 전도사'를 자처하게 됐다. 그는 "계단오르기를 꾸준히 하면서 살이 빠지고, 자세가 좋아지고, 우울증도 싹 사라져 정신적으로도 매우 건강해졌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 '계단을 오르면 건강해진다'고 널리 알리고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에 뜻이 맞는 주변인들과 함께 사단법인 대한계단오르기걷기협회를 출범시켰다. 부산 서면에서 공군5공중기동비행단 장병 및 군무원들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선 교직원 및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계단오르기걷기대회도 열었다. 현재 인터넷 카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꾸준히 소통하고 함께 계단오르기 운동을 하는 사람이 1000명가량 된다. "이따금 '계단을 오르면서 마음이 치유됐다' '건강을 회복했다'는 얼굴도 모르는 팬들의 다이렉트 메시지(DM)를 받을 때면 더 많은 사람에게, 좀 더 체계적인 계단오르기 프로그램을 전해야겠다는 소명 의식마저 갖게 돼요."
최완정은 지난 2월부터 동대문구 산하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의 센터장도 맡고 있다. 1960년대 한국영화 촬영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답십리종합영화촬영소 자리에서 센터의 문화예술 교육, 행사, 대관 등 운영을 총괄한다. 매일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 1000평 규모의 스튜디오와 공연장, 박물관, 편집실, 영화관 등을 계단으로 오가다 보면 저절로 하루 1만보는 족히 걷는다고 했다. 그는 "오랜 연예계 생활과 십수년간의 사업 경험을 살려 한국 영화계의 역사를 품은 센터의 교육·공연·전시를 기획하고 지역사회에도 기여하겠다"고 덧붙였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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