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수담(手談)]1000승 대기록 뒤엔 수백 번의 패배가 있다

시계아이콘01분 28초 소요
언어변환 뉴스듣기

원성진 9단의 24년 걸친 위업
500번 넘는 패배 있었기에 가능
실패로 얻는 경험이 더 깊이 남아

프로 바둑기사 원성진 9단이 또 하나의 대기록을 남겼다. 1000승의 위업. 지난 4월20일 달성한 이 기록은 국내 프로기사 중 17번째다. 1000승은 현재 세계 최강이라는 신진서 9단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이다. 한국기원에 따르면 신진서는 9일 현재 698승을 기록 중이다.


원성진은 1998년 5월 입단 이후 24년 11개월에 걸쳐 1000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강산이 두 번은 변하고도 남을 오랜 세월, 1승씩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원성진의 기록 뒤에는 잊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숫자가 있다. 1000승 이상을 올리는 동안 거둔 515패의 기록. 500번이 넘는 쓰라린 눈물을 경험했기에 대기록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바둑은 참으로 묘한 승부의 세계이다. 바둑사를 되돌아보면 세상을 호령했던 압도적인 실력의 강자는 언제든 존재했다. 국내만 보더라도 조훈현, 이창호, 신진서 등 시대를 풍미한 세계 최고의 기사들이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인물도 패배의 굴곡을 피할 수 없다. 그게 바둑이고, 흑과 백의 돌을 움켜쥔 자들의 숙명이다. 프로 바둑기사는 누구나 수백 번 운다.


[수담(手談)]1000승 대기록 뒤엔 수백 번의 패배가 있다
AD

세계 최강 신진서의 올해 성적표는 대단하다. 45승 3패로 승률은 0.938에 이른다. 신산(神算) 이창호를 포함해 국내 어떤 기사도 연간 승률 0.900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다. 바둑의 신화를 쓰고 있는 신진서의 올해 최종 승률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신진서의 통산 성적을 살펴보면 698승을 올리는 동안 195패를 당했다. 천하의 신진서도 200번에 가까운 패배를 경험한 셈이다. 단지 확률이 낮을 뿐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신진서를 이길 가능성이 있다.


‘고추장 바둑’의 대명사인 서봉수 9단은 어떨까. 그는 29년 전인 1994년 1000승의 위업을 달성한 또 하나의 전설이다. 통산 1753승의 대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서봉수가 1039패를 당했다는 점이다. 1000번이 넘는 프로기전의 패배,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세상에 아무렇지도 않은 패배는 없다. 바둑도 마찬가지다. 프로기사에게 1패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자 아픔이다. 패배한 대국의 착점(着點) 하나하나는 기록으로 남는다. 그를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돼서 평생을 괴롭힌다. 왜 패배했는지, 왜 이런 어리석은 수를 뒀는지 세상에 까발려진다.


패배도 괴롭고 억울한데 실수의 상흔을, 그것도 영원히 노출해야 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실제로 패배한 프로기사가 자기 머리를 쥐어뜯고, 뺨을 때리고, 심지어 분루(憤淚)를 삼키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대중에 노출될 때가 있다. 그 고통의 깊이를 타인이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바둑은 가혹한 세계이지만 그 어떤 영역보다 실패에 관대하다. 실패 그 자체가 인생을 나락으로 견인하지는 않는다.


실패는 또 하나의 소중한 인생 경험이다. 어설픈 수로 승리했을 때보다 아쉬운 한 수로 패배를 경험했을 때 더 깊이 남는다. 기력(棋力)의 토대를 더 단단하게 하는 자산으로 몸에 새겨진다. 서봉수도 원성진도 천하의 신진서도 프로기사로서 수백 번 이상을 울었다. 그 눈물이 켜켜이 쌓이고 굳고 또 굳어서 지금의 강함으로 이어졌다.


AD

바둑기사가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는 기력 때문이 아니라 패배에 굴하지 않는 자세,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내의 담금질’ 때문인지도 모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1510:17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도축·가공 현장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경남권의 핵심 거점인 부경양돈협동조합 통합부경축산물공판장과 대전·충남권의 대전충남양돈농협 산하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생산성과 위생, 환경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국내 축산물 경쟁력 강화의 실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공판장의 역할이 단순

  • 25.12.1209:58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제주 축산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제주 한라산바이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가축분뇨를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전환하며 지역 축산업의 환경 기반을 바꾼 시설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약 55만~60만마리의 돼지가 사육되며 하루 2500t 가까운 분뇨가 발생하는데, 한라산바이오는 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자원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분뇨가

  • 25.12.1108:51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자유무역협정(FTA) 국내 보완대책을 통해 설립된 '충주 거점 산지유통센터(APC)'는 단양과 제천, 음성, 괴산 등 충북 북부권에 위치한 농가 650곳에서 생산한 사과를 세척·선별·포장·출하하는 과실 전문 APC입니다. 생산단계부터 관리하고 사과 브랜드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저온저장고와 선별기 등을 통해 비용을 줄여 농가엔 더 큰 수익을, 소비자들에겐 품질 좋은 사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 25.12.1010:18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59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축산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국내보완대책 가운데 하나가 '조사료생산기반확충 사업'이다. 조사료는 볏짚이나 목초 등 거친 섬유질 위주의 사료로, 이 사업을 통해 국산 조사료의 생산·유통·가공 기반을 갖춘 지역 단위 가공·유통센터가 확충되면서 국산 조사료 품질과 시장 신뢰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전주김제

  • 25.12.0909:11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올해 3분기 기준 한국은 22개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해 59개 국가와 FTA를 활용한 무역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첫 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4월 이후 약 21년 5개월 만의 성과다. 정부는 현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85% 수준인 FTA 네트워크를 글로벌 1위인 90%까지 더 넓고 촘촘하게 확충할 방침이다. FTA 네트워크 확대에 따라 한국의 수출 시장이 넓어진 만큼 수출액도 2004년 2538억달러에서 2024년 6836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