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월트디즈니 창립 100주년
M&A 통해 콘텐츠 제국 성장했지만
기술혁명의 벽 넘지 못하고 고전
1923년 10월 동심을 자극하는 ‘미키 마우스’ 캐릭터 하나로 시작해 애니메이션·영화·음악·방송·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아우르는 미디어 거물로 성장한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는다. 디즈니는 지난 100년 간 유력 경쟁사를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리며 시가총액 1830억달러(약 241조원)·글로벌 56위 기업으로 우뚝 섰지만 OTT 등 기술혁명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잇단 악재에 한계를 느낀 디즈니는 최근 경영진을 물갈이하는 등 쇄신에 나서며 다음 100년을 위한 반전을 꿈꾸고 있다.
‘동심’의 디즈니, 저작권 ‘괴물’이 되기까지
미키 마우스가 등장하는 ‘증기선 윌리’(1927년)를 시작으로 ‘백설공주’(1937년) ‘토이스토리’(1995년) ‘겨울왕국’(2013년) 등 수없이 많은 인기 애니메이션을 탄생시킨 디즈니는 콘텐츠 왕국이자 저작권 괴물로 불린다. ‘무인도에 홀로 남겨졌다면 모래사장에 커다란 미키 마우스를 그려라. 그러면 당신이 어디에 있든 디즈니의 법무팀이 귀신같이 찾아갈 것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디즈니는 저작권을 중시한다.
디즈니가 저작권 관리에 철저하게 된 배경은 1923년 창립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려진 것과 다르게 디즈니가 창사 후 처음 만든 캐릭터는 생쥐(미키 마우스)가 아닌 토끼(오스왈드 래빗)였다. 디즈니의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가 19세에 회사를 설립하고 처음 만든 토끼 캐릭터 오스왈드의 배급을 찰스 민츠에게 맡겼는데, 그가 디즈니 몰래 유니버셜과 계약을 맺으면서 판권을 빼앗기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분노에 찬 디즈니가 판권 관리에 사활을 걸게 된다.
디즈니의 간판 캐릭터이자 전 세계 캐릭터 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미키 마우스는 미국의 저작권 역사도 바꿔놨다. 미키 마우스가 세상에 나온 1928년만 해도 미 저작권법상 보호기간은 최대 56년이었다. 하지만 디즈니는 막대한 자금력과 로비력을 동원해 1976년,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저작권 보호기간을 각각 최대 75년, 95년으로 늘리는 법 개정을 성사시켰다.
아이거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집중 인수 ‘승부수’
디즈니는 1957년 들어 애니메이션 제작(스튜디오) 사업을 테마파크·소매점(상품)·음악·출판·TV 프로그램을 제작·유통하는 콘텐츠 제국으로 확장했다. 이후 1984년부터 10년 간 디즈니의 황금기가 이어졌고, 이 황금기를 이끌었던 스튜디오 책임자 제프리 캐천버그가 퇴사한 뒤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공격적인 투자로 디즈니를 지금의 자리로 올린 것은 밥 아이거 최고경영자(CEO)였다. 아이거는 2005년 처음 디즈니에 합류했다. 디즈니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 있을 때였다. 제작하는 작품마다 부진을 겪으면서 ‘디즈니의 혁신이 얼음 위에 서 있다’는 비아냥을 받았고, 주요 계열사 경영진을 오너 일가의 친인척으로 채우는 족벌경영 체제도 거센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거는 ‘위기는 기회’라는 역발상으로 대형 M&A를 연달아 성사했다. 2006년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를 74억달러(약 9조7000억원)에 인수했고, 2009년에는 애니메이션계의 양대산맥이었던 마블 엔터테인먼트(40억달러)마저 삼키며 영화·애니메이션 제작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영화 스타워즈의 제작사 루카스필름(41억달러)을, 2019년에는 20세기 폭스의 영화·TV사업(524억달러)를 사들였다.
유력 경쟁사들을 연달아 품는 전례없는 M&A는 앞으로 늘어나게 될 콘텐츠 수요와 시장 판도를 내다본 아이거의 승부수였다. 그리고 이 수는 적중했다. 이 기간 디즈니의 실적과 주가는 수직 상승했고, 창사 이래 최고의 전성기가 이어졌다. 디즈니의 순이익은 연간 배 이상 성장했고, 주가는 10년 새 5배나 뛰면서 경쟁사 컴캐스트, 타임워너스, 비아컴 등을 모두 제쳤다.
차세대 개척지 스트리밍·메타버스로 새판… 위기의 시작
2일 종가 기준 디즈니의 주가는 100.13달러를 기록하며 3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역사적 최고점(201.91달러)을 기준으로 하면 반토막 난 셈이다. 주가 부진 원인으로는 실적 악화가 꼽힌다. 디즈니는 영화·TV 산업이 쇠퇴하고 OTT 산업이 부상하는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도 승기를 잡지 못했다. 2007년 일찍이 온라인 OTT 시장에 발을 담근 넷플릭스보다 10여년이나 늦은 2019년에서야 이 시장에 진출했다.
후발주자로 뛰어든 디즈니는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시장 탈환에 주력하고 있지만 성과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막대한 마케팅 투자로 글로벌 구독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경쟁 격화와 경기 침체에 따른 광고 매출 감소 등의 타격으로 해당 사업부의 적자 폭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에 경쟁 사업자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경쟁이 격화되면서 디즈니는 OTT 사업에서만 분기당 1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보고 있다. 결국 디즈니 이사회는 밥 체이팩 CEO를 해고하고, 아이거를 복귀시켰다. 지난 2020년 2월 CEO 직함을 내려놓고, 2021년 12월 이사회 의장 자리까지 내려놓은 아이거는 결국 1년 만에 디즈니로 귀환했다. 아이거의 복귀 소식에 주가(지난해 11월21일)는 6%대 급등하며 환호했다.
롤러코스터 주가… 위기 속 등판 아이거의 과제
최악의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디즈니를 반전시킬 시간으로 2년이 주어졌다. 아이거는 큰 폭의 손실을 보고 있는 OTT 사업을 비롯해 전사적인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아이거는 복귀 후 직원들과의 첫 대화에서 "OTT 사업부를 수익 구조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맹목적인 구독자 수 확대 전략을 폐기하고 막대한 마케팅 지출도 과감하게 줄이는 등 사업 전반을 과감하게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디즈니는 영화·TV사업부를 OTT 사업부와 통합하고 스포츠 미디어를 운영하는 ESPN사업부, 디즈니 파크·디즈니 크루즈 라인·제품사업부 등 총 3개 부문으로 재편했다.
메타버스(확장 가상세계) 사업도 구조조정의 한 축이 됐다. 체이팩 전 CEO는 2021년 가상세계에서 구현할 수 있는 방대한 콘텐츠와 저작권을 가진 ‘디즈니가 곧 메타버스’라며 호기롭게 메타버스 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하지만 몇년 지나지 않아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하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비용 절감을 위한 감원도 이어지고 있다. 아이거는 지난 27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올 여름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정리해고를 진행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약 70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감원 규모는 글로벌 직원 22만명의 약 3%에 해당하며 이를 통해 약 55억달러를 절감할 것으로 보인다.
월가 기업 사냥꾼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도 과제다. 월가 행동주의 헤지펀드 트라이언펀드매니지먼트의 넬슨 펠츠 CEO는 월트 디즈니 지분 0.5%(9억달러 상당)를 사들이며 이사회 입성을 노리고 있다. 펠츠 CEO는 디즈니가 ‘21세기 폭스’ 인수에 과도한 비용을 지출해 재무 구조를 악화시켰고, OTT 사업에서 고전하는 등 원칙 없는 경영으로 주주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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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경영권 도전을 어떻게 방어하고, 각종 캐릭터 사업 로열티 유산을 관리하고 신규 사업을 수익 구조로 전환하는 데 디즈니의 향후 100년의 미래가 달렸다"고 지적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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