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 알뜰주유소·석유 전자상거래 10여년
주유소 감소…"정부가 불공정거래 주도"
온라인 거래 절차 번거롭고 추가부담금도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고유가로 서민들이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정부는 정유업계를 향해 전가의 보도처럼 '경쟁 촉진'을 주문했다. 4개 정유사로 시장이 굳어져 경쟁보단 기름값을 낮추지 않는 이른바 '배짱 영업'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반 주유소보다 판매 가격을 낮춘 알뜰주유소가 등장했고, 한국거래소에 온라인으로 석유를 사고팔 수 있는 시장도 생겼다.
그 후 10여년이 지났지만, 고유가로 인한 고통은 여전하다. 경쟁을 늘려서 기름값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곤 하더라도 기름값 논란은 되풀이되고 있다. 기름값의 절반을 넘는 유류세나 원유에 부과하는 관세 등 세제는 그대로 놔둔 채 기름값을 잡겠다는 의욕에서 비롯된 제도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제 전국에서 영업 중인 주유소 10개 가운데 1개 이상이 알뜰 주유소다. 한국석유관리원 통계를 보면 1월 말 기준 전국 주유소는 1만1136개로 이 가운데 알뜰주유소는 1307개에 달한다. 알뜰주유소 비율은 12%에 육박한다. 한국석유공사와 농협, 한국도로공사가 알뜰주유소 사업을 시작한 2011년 12월 목표로 했던 10%를 초과 달성했다.
이유는 저렴한 가격이다. 알뜰주유소에 고객이 몰리면서 일반 주유소에서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는 곳도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알뜰주유소는 해마다 늘어나는 반면 일반 주유소는 줄어드는 추세다.
알뜰주유소는 석유공사와 농협, 도로공사가 정유사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대량 공동 구매해서 공급하고 있다. 또 사은품 등 서비스를 없애고 셀프 주유를 통해 인건비를 절감해 주유소 운영비용도 줄였다. 저렴한 가격에 팔 수 있는 비결이지만, 여기엔 또 다른 함정이 있다. 바로 사업 주체들의 적자다.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석유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9월 기준 알뜰주유소 사업은 84억원 적자를 봤다. 전년도 235억원 흑자를 봤지만 불과 일 년 만에 이익이 무려 319억원이나 줄었다. 국제유가가 치솟자 비싸게 석유를 사서 주유소에 싸게 공급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작년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혁신 대상으로 민간과 경합하는 기능을 축소하겠다고 밝혔을 때 퇴출 1순위로 알뜰주유소가 거론되기까지 했다.
품질관리에도 허점이 보인다. 품질미달 제품이나 가짜 석유를 판매하는 등 불법 행위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2017년부터 작년 8월까지 석유공사 자영 알뜰주유소 총 143곳에서 석유사업법 위반행위가 적발됐다. 농협 알뜰주유소는 90곳, 도로공사 알뜰주유소는 9곳이 적발당했다. 또 알뜰주유소 보다 가격을 낮춘 주유소까지 생겨나면서 가격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
홍우형 한성대 교수는 "정부가 알뜰주유소 정책을 통해 일부 주유소에만 기름을 싸게 공급하는 것 자체가 불공정 경쟁"이라며 "주유소 시장은 제로섬 게임에 가까워 알뜰주유소는 판매량 증가로 수혜를 보지만 일반주유소는 판매량 감소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알뜰주유소 시행 이듬해인 2012년 출범한 석유 전자상거래는 아직도 활성화되지 못했다. 올 초부터 지난 21일까지 한국거래소에서 거래된 휘발유는 하루 평균 720만ℓ다. 작년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팔린 휘발유가 3850만ℓ인 점을 고려하면, 온라인 거래 물량이 전체의 20% 이하다. 게다가 국내 석유제품을 해외에 파는 석유수출입업자 거래가 온라인 거래 물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온라인거래 가격은 ℓ당 1447원으로, 정유사 공급가격(1515원)보다 저렴하다. 그래도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거래보증금을 사전에 금융기관에 예탁해야 하는 등 절차가 번거롭기 때문이다. 또 매수자는 배송료와 수수료, 부가세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매수자에게 지원하던 세액공제(매수 금액의 0.2%)도 지난해 말 종료됐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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