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경 빅밸류 대표
법조·증권 이력 관통하는 '부동산'
"융합을 통한 창의와 과정이 중요"
4차 산업혁명 변화 속 '창업' 도전
"여성 스스로 소극적인 면 버려야"
[아시아경제 노경조 기자] "누구나 안 해 본 일을 할 땐 힘듦과 불안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하고,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경영학 전공자로 변호사를 하다가 증권사 투자 부서를 거쳐 부동산 빅데이터 기업을 창업한 이가 있다. 바로 빅밸류의 김진경 대표다. 남성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 이미지가 강한 건설·부동산업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리더다.
변화의 파도 속으로…'데이터로 세상의 가치를 밝히다'
빅밸류는 2015년 4명의 공동창업자 손에서 태어났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속속 나오던 때다. 이들의 고민은 길지 않았고 호기심은 실패에 대한 걱정을 지웠다.
김 대표는 "당시 기술을 기반으로 많이 달라지겠구나 생각했다"며 "개발자나 경력자가 아니어서 두렵기도 했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를 피하기보다는 한번 들어가서 보자는 마음이 컸다"고 창업에 도전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그동안 성실하게 모범생처럼 살아왔고, 작은 실패도 못견뎌 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음에도 성장과정을 체험하면서 히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선택을 한 것이다. 여기에는 '흙길·돌길을 가보기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다채로운 이력과 경험은 빅밸류를 이끌어가는 밑거름이 됐다. 그는 "모든 일이 그렇듯 활용하기 나름이고, 바라보기 나름이다"라며 "전공이 무엇인지보다 융합, 어떤 포인트를 접목해 창의적인 걸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빅밸류는 부동산·공간 빅데이터를 서비스한다. 이를 통해 부동산금융 시장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자는 데에서 출발했다. 금융회사에서 기관투자자나 고액 자산가들을 위한 전문가 자문서비스를 하는데, 데이터나 기술을 활용하면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이 같은 서비스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즐비한 아파트 시세 정보 사이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빌라(연립·다세대주택)에 초점을 맞췄다. 면적·입지 등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1000개 이상의 변수를 추출해 반복 학습을 거쳐 하나의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매도 호가가 아닌 실거래 기반의 시세 빅데이터"라며 "금융회사와 프롭·핀테크, 나아가 유통 분야까지 기업 간 거래(B2B)를 하고 있다. 빌라 시세는 무료로 오픈 중이다"라고 말했다.
해당 빅데이터는 이른바 빌리왕과 같은 전세사기를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그는 "수백·수천채를 가진 특정인이 비슷한 시점에 명의를 넘기고, 명의자가 바지사장으로 있다가 돌려막기를 못하면 파산하는 식의 의도된 사기는 데이터로 선별할 수 있다"며 "건축물 대장상의 데이터를 보면 매매 시세보다 높은 금액에 거래되는 것도 감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백빌류의 경쟁사로 꼽히는 곳은 아직 없다. 그래서일까. 스타트업은 투자 유치가 중요한데 빅밸류는 지난해 해를 넘기기 전 펀딩을 마무리했다. 올해는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일단 시도하면 많은 것을 빠르게 배우게 된다. 이때 내가 완벽할 수 없고, 부족해도 된다는 걸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더불어 실패해도 다시 시작해볼 수 있는 마음가짐과 이를 지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막상 닥쳐보면 별 게 아닐 수 있다는 용기의 말도 덧붙였다.
"여성 리더십에 대한 고민과 다양성 존중에 노력"
김 대표는 특히 여성 스스로가 리더를 맡는 데 있어 소극적인 면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은 경험이나마 시도해보고, 성과를 챙기는 데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분명 성공한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며, 불확실한 도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빅밸류 안착에 집중해오던 그가 이렇듯 여성 리더로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피게 된 계기는 지난해 8월 열린 '블록체인위크'가 결정적이었다.
김 대표는 "프로그램 중 여성 리더십 세미나가 있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아시아계 위원을 비롯해 인도 등 각국의 주류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이 참석했다"며 "대화를 나누다가 알게 된 사실은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분야별로 여성 비율이 작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이라서 느끼는 부당함과 워킹맘으로서의 어려움 등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나라나 별반 다르지 않아 놀라웠다"며 "덕분에 '여성으로서 고민을 같이 나누고 정체성을 띄는 게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를 느꼈다"고 전했다. 이에 각국 여성 리더들과의 소통은 물론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여성 리더십과 다양성을 인정·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사실 여성 리더십에 대한 고민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매일을 살면서 직접 보고 듣고 체감하던 바였다. 건설·부동산업계에 여성이 많지 않아 간담회를 가면 당연히 혼자만 여자거나 있더라도 소수였고, 직원 수도 창업 초반에는 여성이 절반가량이었는데 지금은 전체의 5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육아 등에서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운이 좋은 워킹맘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후배 여성들을 보면 육아를 포함한 결혼,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의 양립 등 중요한 커리어 전환 시점에 늘 많은 고민을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육아에 있어서 일하는 엄마들은 늘 죄책감을 안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내가 행복한 선택을 하고, 좋은 에너지를 공유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믿고 그렇게 조언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프롭테크에 대한 관심도 환기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인 김 대표는 "수강신청 대기 등을 통해 프롭테크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점차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며 "플랫폼이 발전하다보면 기존 시장 사업자들과 업무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고객을 위한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규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라며 "결과는 소비자들이 결정한다. 플랫폼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는 소비자 피해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어 이해를 바탕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진경 대표는
김진경 빅밸류 대표는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제4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38기로 수료했다. 부동산 소송 특화 법무법인에서 일하다가 증권사로 둥지를 옮겼다. 2011년부터 약 5년간 교보증권 자산운용본부 과장, KTB증권 IB본부 차장을 거쳐 2015년 빅밸류를 창업했다.
노경조 기자 felizk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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