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차완용 기자] 연내 미분양 주택 수 10만 가구가 돌파할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현실화할 경우 금융위기 이후 장기 침체 상황과 유사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지난 2019~2021년 부동산 불장이 이어지며 집값이 급등한 만큼, 부동산 시장이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주택·부동산 연구기관들은 일제히 올해 주택시장 침체를 점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전국 주택가격 변동률을 2.5%로 전망했고,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수도권 아파트값이 3~4%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주택산업연구원도 올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이 8.5%, 수도권 아파트는 13.0% 하락할 것으로 관측했다.
부동산시장 침체 원인으로 고금리, 경기침체 등 대내외적 거시경제 상황이 꼽힌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집값에서 기준금리가 차지하는 영향은 50∼60%에 이른다. 하지만 금리 인상이 멈추더라도 여전히 금리 수준이 높은데다 금리가 하락세로 돌아서더라도 경기침체로 매수 심리가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분양 주택 급등은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경제위기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1993년 미분양 주택 집계를 시작한 이래 10만 가구 수준의 미분양이 발생했던 시기는 국내는 물론 세계 경제에 문제가 생겼을 때다.
미분양 주택 통계를 탄생시켰던 1993년은 멕시코의 페소 위기 등 신흥국의 금융 위기 사태가 발생했던 시기다. 당시 미분양 주택은 1993년 7만7488가구에서 이듬해 10만5586가구로 뛴 후 1995년에는 15만2313가구까지 급증했다.
이후 1996년부터 미분양 주택 수가 조금씩 감소해 1997년에는 8만8867가구까지 줄어들었지만, 1997년 말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1998년에는 다시 10만2701가구로 늘어났다.
미국의 부동산 금융시장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7년은 우리나라 주택 시장은 최악의 침체기를 맞았다. 2006년 7만3772가구 수준이었던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2007년 11만2254가구로 급증했고, 2008년에는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인 16만5599가구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이 여파는 2009년(12만3297가구)까지 이어졌다.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해보면 현재의 미분양 급증 추이는 예사롭지 않다. 금융위기 초반 미분양은 1년 동안 4만 가구가 채 발생하지 않았지만, 현시점의 주택시장 침체가 시작된 지난해에는 5만 가구 넘게 늘어났다. 무려 1만 가구 이상의 차이다.
더욱이 2019~2021년 동안 이어진 부동산 불장 기간 동안 투기 열풍까지 더해지면서 집값이 급속도로 치솟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집값 평균 매매가는 2018년 7억1775만원에서 2019년 8억2723만원, 2020년 8억9310만원, 2021년 11억5147만원으로 급등했다.
또 이 기간에 원정 투자까지 성행하면서 2018년(12월 기준) 5만8838가구였던 전국 미분양 물량은 ▲2019년 4만7797가구 ▲2020년 1만9005가구 ▲2021년 1만7710가구로 감소했다. 특히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13개월 동안 미분양 물량이 1만 가구대로 유지됐다. 이는 미분양 통계 작성 이후 최저 물량 최장기간 기록이다. 이전 1만 가구대는 2002년 4월(1만7169)과 5월(1만8603)뿐이었다.
많은 전문가와 건설부동산업계에서는 이번 부동산 침체로 상당 기간 가격 조정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말, 내년 초까지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다가 이후 오랫동안 바닥에서 횡보하는 ‘L자형’ 추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주택산업연구원은 ‘2023년 주택시장 전망과 정책 방향’ 세미나에서 부동산시장 침체 탓에 건설업체 부도가 급증하고, 제2금융권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완용 기자 yongch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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