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부산 금정구의원 ‘저 세상’ 당선자
유권자 누구도 보지 못한 후보의 당선
후보등록 전 실종, 당선증 가족이 대신받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유권자들이 죽은 사람을 당선시키는 게 가능할까. 해외토픽의 기막힌 사연이 아니라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2006년 5·31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황당 사건이다.
구의원 선거에 도전한 한나라당 박상규 후보. 그는 2006년 5월 16일 ‘금정구 마 선거구’에 후보 등록했다. 후보 등록은 본인이 아닌 가족이 대신했다. 해당 선거구는 경쟁이 치열했다. 무려 10명의 후보가 등록했다. 3등까지 당선자로 뽑히는 중대선거구제였다.
후보들은 당선을 위해 발이 닳도록 뛰었다. 유권자에게 명함을 전했다. 90도 인사를 하면서 한 표를 부탁했다. 골목 곳곳을 누비며 왜 자기가 구의원이 돼야 하는지를 역설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권자 누구도 선거운동 기간 그를 보지 못했다. 물론 선거운동을 한 일도 없다. 하지만 그는 당선자가 됐다.
금정구 4090명의 유권자가 그를 뽑았다. 득표율 12.3%로 3위를 차지했다. 선거가 끝난 이후 금정구 선거관리위원회는 난감했다. 당선증을 전해야 하는데 박 구의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초의원(구의원) 당선증은 부인이 대신 수령했다.
알고 보니 박 구의원은 5월 12일 집을 나간 뒤 사실상 실종된 상태였다. 그는 보이지 않았지만, 후보도 등록했고, 선거도 치렀으며, 당선증도 받았다. 금정구의회는 “구의회 개원 때까지 나타나지 않아도 의원직 상실이나 박탈 사유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박 구의원은 어디로 간 것일까. 경찰은 실종된 그를 찾고자 수사력을 집중했다. 평소 자주 가던 곳을 수색하고 타고 나간 차량을 전국에 수배했다. 6월 10일 드디어 박 구의원 소재가 파악됐다. 그는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산 금정구민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 죽은 사람도 ○○○당 간판만 달면 뽑아주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는 실화였다. 유권자들의 묻지 마 투표 성향을 비꼬는 말이었다.
구의원 선거 전에 실종됐던 인물이 당선 후 숨진 채 발견되자 법적인 공방이 벌어졌다. 죽은 사람을 뽑았던 투표를 무효표로 처리 한다면 차점자인 4위를 기록한 인물이 뽑힐 수도 있다. 유효로 판단한다면 재·보궐선거 대상이다. 법원은 4위 후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2007년 9월, 금정구의원 선거에서 4위로 낙선했던 김모씨가 낸 당선무효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금정구 선관위는 투표 이후 당선인 결정전까지 사망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유효투표로 볼 수밖에 없다”는 부산고법의 손을 들어줬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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