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학자 김시덕 박사에게 듣는다
더 남쪽으로 가지 않은 것 아쉽지만
용산 이동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
서울은 근본적으로 안보에 운명 달려
北 갈등 속 강남 집중화 극복 쉽지않아
용산·마포·여의도는 새로운 축 될 것
[아시아경제 성기호 기자] 최근 서울의 가장 큰 변화는 단연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에서부터 시작된다. 광화문 일대는 조선의 건국 이후 630여년간 한반도의 권력이 집중된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그 권력의 중심이 용산으로 옮긴 것이다.
문헌학자 김시덕 박사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대해 "더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큰 변화의 시작"이라며 "용산은 고려 때 수도 후보지로 꼽혔을 만큼 중요한 장소인데, 이곳에 대통령실을 이전한 것만 해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우리나라는 안보적 특수 상황이 있고, 최근 글로벌 정세가 다시 신 냉전 체제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에 강남 집중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인위적으로 개발을 제한하는 것이 서울을 조화롭지 못한 도시로 만들었다"면서 "서울의 미래를 위해 경기도까지 포함해 구상하는 ‘대 서울’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가장 주목받는 장소인 용산과 강남에 대한 미래를 짚어보기 위해, 김 박사를 지난 2일 서울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어떻게 평가하나.
▲사실 더 남쪽으로 내려가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용산으로 이동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사실 용산은 고려 말기 때 수도이전 후보지 중 하나였다. 세 군데가 후보였는데 한 곳이 용산 그리고 다른 곳이 노원과 도봉이다. 그 시대 용산은 고려시대 수도인 개성에서 물길이 바로 이어지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용산과 개성은 ‘부군당’ 신앙을 공유하는 지역이다. 고려 말 조선 초에 홍수 때문에 한강의 모래 둑이 무너지면서 용산이 물길로 이동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지역이 됐다. 그러면서 마포와 용산이 중요해진 것이다.
-대통령실이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서울이 북한과 너무 가깝다는 안보적 특수성이 있다. 강남 개발도 다 여기서 기원한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이 부분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 대전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서울을 천도할 계획이 있었다. 수도 예정지의 기준은 북한의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비무장지대(DMZ)와 거리가 멀어야 하고 또 하나는 서해안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안전한, 해안가에서 최소 30km 이상 떨어진 내륙이어야 했다. 이 기준에 맞추면 계룡이 가장 적합한데 이 지역은 수도로 삼기에 부지가 너무 작아 세종시가 후보지로 낙점이 된 것이다.
-서울의 운명이 안보에 갈렸다는 것인가.
▲그렇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수도 이전 계획을 세운 것은 베트남 전쟁 때문이었다. 세계적으로 냉전이 심화하니 북한과의 전쟁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죽으면서 세종 천도 계획은 백지화가 되고, 대신 북한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떨어진 강남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수도에 대한 보수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종시까지 이전은 바라지도 않았고, 대통령실이 과천까지 아예 한강 이남으로 내려오기를 바랐는데 그게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국회와 대통령실의 세종 청사가 만들어지면, 정부의 권력이 세종으로 이전하고 서울은 상징적인 도시가 될 것으로 본다.
-강남이 안보 측면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앞으로도 강남 집중화가 계속될 것으로 보나.
▲냉전이 종료되면서 우리도 북한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지어진 것이 북한과 가까운 인천 공항이고, 일산 신도시다. 하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 세계가 다시 양극화 체제로 넘어가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도 더욱 악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 집중 현상이 쉽게 극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서울 균형 개발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차라리 강남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것이 더 옳다고 본다. 35층 고도 제한도 다 풀어버려야 한다고 본다. (인터뷰 당시에는 서울 35층 고도 규제 폐지하는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이 발표되기 전이었다) 인위적인 규제보다는 민간이 개발을 주도하게 모든 것을 풀어줘야 한다고 본다.
-오히려 강남을 더 개발해야 한다는 것인가.
▲강남 집중화가 문제이지만 아직 인구를 더 수용할 여력이 있다. 이걸 알 수 있는 것이 집값이다. 아직 교통이나 편의시설 등이 인구를 더 수용할 여력이 있기 때문에 집값이 고공행진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18세기 프랑스의 파리처럼 고밀도 도시가 돼야 한다. 지금이야 프랑스 사람들이 18세기 시절 파리가 아름답다고 보기 때문에 더 이상 개발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그 시절 파리는 세계에서 최고로 고층 건물이 많은 고밀도 도시였다. 그렇기 때문에 고흐나 고갱 등 예술가들이 파리에 살 수 있었다. 집값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서울은 가난한 예술가가 살기가 쉽지 않다. 이게 다 집값 때문이다.
-강남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야 한다는 말인가.
▲사람은 누구나 이동하기 편한 곳, 직장과 학교 그리고 편의시설이 가까운 곳을 선호한다. 차라리 강남 전철역 위에 35층 이상 높은 건물을 지어 돈 있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게 하고, 전철역에서 10~15분 거리에는 비교적 서민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서로 다른 계급이 같은 생활권에서 서로 조화롭게 살 수 있다. 계급에 따라 사는 지역이 달라져 버리면 사회적 갈등이 더욱 커진다. 하지만 고밀도 도시가 되면 서로가 섞여서 살게 된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미국의 뉴욕이다.
-그렇다면 서울은 강남 집중화가 더욱 가속화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용산과 마포 그리고 여의도는 하나의 축으로 새로운 서울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강남 4구’ 수준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중심축이 될 것이다. 이곳은 서울의 중심이라 입지가 너무 좋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 놓은 시설이 많고, 앞으로도 할 계획도 많다. 용산만 봐도 용산공원이 있고, 전자상가 재개발 계획이 있으며 철도 정비창 부지가 남아있다. 이곳은 발전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용산공원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인가.
▲공원은 작은 공원이 여러 곳 있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용산공원은 남산 등을 감안하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넓은 공원이 될 것이다. 일부는 개발해도 좋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앞서 이야기한 고밀도 도시에 대한 실험이 가능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기존에 공원 주변에 사는 사람만 용산공원을 향유할 가능성이 높다.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고층빌딩은 물론, 서울시가 나서서 대규모 임대주택을 지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융화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규모의 임대주택을 통해 사람들의 머릿수가 많아지면 투표권이라는 힘이 생기기 때문에 문제점을 자연스럽게 고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고층빌딩과 임대주택 속에서 다양한 계층이 거대한 공원 주변에 살게 하자는 것이다. 서울에 이만큼 대규모 부지가 생기기가 쉽지 않다. 서울의 미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실험이라고 본다.
김시덕 박사는 주류 역사보다는 서민들의 삶에 집중해 전국 곳곳을 다니며 촬영과 기록을 진행하고 있는 도시 답사가이자, 도시 문헌학자이다.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일본의 국립 문헌학 연구소인 국문학 연구 자료관(총합연구 대학원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인문한국(HK)연구교수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HK교수를 역임했다. 서울과 관련해서는 저서 ‘서울 선언’, ‘갈등 도시’, ‘대 서울의 길’을 통해 삶과 함께하는 역사를 조망했다. 또 일본인의 시각으로 본 임진왜란에 대한 책 ‘그들이 본 임진왜란’을 집필하는 등 임진왜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기도 했다.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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