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통과 쉬워질 전망
재건축 가능 단지 0→12개로
재초환 규제 요인은 여전
전문가 "매수심리 이미 바닥, 완충 역할 제한적"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안전진단기준이 완화되면서 목동, 태릉 등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에 준공된 단지들의 재건축 추진이 빨라질 수 있게 됐다. 탈락이 우려돼 정밀안전진단을 미뤘던 단지들도, 안전진단에 나서길 주저했던 단지들도 앞다퉈 안전진단 접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재건축이 활성화되려면 최종 관문인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의 규제 완화가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때문에 시장에선 이번 조치를 호재로 반기면서도 재건축 활성화엔 큰 보탬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미지수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안전진단 완화 시 재건축 가능 단지 ‘0→12’= 정부가 안전진단 기준의 핵심인 구조 안전성 가중치 기준을 낮추면서 재건축 연한인 30년을 채운 단지들의 안전진단 통과가 수월해지게 됐다. 서울에서 2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 중 건령이 30년 이상인 노후아파트 수는 전체 389곳이다. 구조 안전성은 붕괴 위험을 평가하는 것으로 안전진단 통과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5년 5월부터 2018년 2월까지 34개월 동안 안전진단 통과 건수는 전국적으로 총 139건, 연간으로는 49건에 달했다. 서울에서는 총 59건이 안전진단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2018년 3월 안전진단 기준이 강화된 이후 올 11월까지 56개월 동안에는 21개의 단지만이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같은 기간 서울에서는 단 7곳만 통과했다. 더구나 2018년 3월 이후 안전진단을 완료한 46곳 중 재건축 판정을 받은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정부는 이번 기준 완화에 따라 통과 단지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2018년 3월 이후 현형 기준에 따라 안전진단이 완료된 단지(46개) 중 54.3%(25개)는 ‘유지보수’ 판정으로 재건축이 어렵고, 45.7%(21개)가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았다. 같은 단지에 개선된 2개 조건을 적용하면 유지보수 판정이 23.9%(21개)로 줄고 나머지 단지는 사실상 재건축이 가능해지게 된다.
현행 가중치를 적용하면 '유지보수'에 해당돼 사실상 재건축 추진이 막힌 단지들도 개선된 가중치를 대입하면 14개 단지가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은 노원구 1곳, 양천구 2곳, 영등포구 1곳 ▲경기도는 남양주시 1곳, 부천시 1곳, 수원시 1곳, 안산시 1곳 ▲부산은 수영구 1곳, 부산진구 1곳 ▲대구는 달서구 1곳, 북구 1곳, 서구 1곳,▲경북은 구미시 1곳 등 총 14곳이다. 이에 따라 국토부가 안전진단을 완료한 46개 단지를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살펴보면 26.1%(12개)가 ‘재건축’ 판정을 받고, 50%(23개)가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목동·태릉·1기 신도시 수혜… 재초환 규제 넘어야= 안전진단 대못이 뽑히면서 목동신시가지 9·11단지, 태릉 우성 등 서울 재건축 단지와 1기 신도시 등이 수혜를 입게 됐다. 특히 총 14개 단지로 구성된 2만6629가구 규모의 목동신시가지 아파트는 이번 안전진단 완화안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는 단지로 거론된다. 목동은 지난달 초 지구단위계획을 통과한 데다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 서울시 35층 규제폐지 등으로 재건축 추진 시 사업성, 속도 모두 가져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해 정밀안전진단을 앞둔 노원구 ‘상계주공2단지’도 완화 방안이 발표되면 모금에 속도가 붙어 재건축이 본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해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허들은 또 있다. 바로 재초환이다. 재건축 규제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재초환 규제 완화 수준에 따라 재건축 추진이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전진단 요건이 변경되더라도 재초환 같은 재건축 저해 요인은 여전하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며 "재초환은 ‘공공의 이익환수’가 여전히 정부 쪽에서 제시되고 있으므로 추후의 정책변화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해당 노후 아파트 단지들은 일단 행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며 "하지만 재건축의 최종 관문인 재초환의 규제 완화가 뒤따라야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수심리 바닥… 시장 연착륙 효과 제한적= 이번 규제 완화가 얼어붙은 시장을 반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재건축 규제 완화 움직임은 집값을 지지하는 요인이었지만 지금은 ‘금리’가 주택시장 분위기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가 됐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규제 완화 기대심리에 호가를 올릴 수 있어도 매수심리가 얼어붙어 매수세가 따라붙지 못하는 동상이몽 판세가 펼쳐질 수 있다.
박원갑 수석전문위원은 "집주인들의 기대감으로 일부 호가 인상이나 급매물 회사는 있겠지만 고금리 태풍에 집값 추가하락 우려로 매수심리가 바닥권이라 거래가 힘들 것"이라며 "다만 집값 추가 하락을 다소 줄여주는 완충 역할이나 연착륙에 일부 도움을 주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재건축을 추진하던 기존 단지들, 즉 안전진단을 시행하려던 아파트 단지들에는 호재이지만 가격급등은 쉽지 않다"며 "금리가 오른 것보다도 어디까지 오를지를 예상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중요하고 특히 외부 요인의 영향을 국내 정책변화로 상쇄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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