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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몽환의 시간을 응시하는 ‘그림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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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까지, 국제갤러리 이기봉 개인전 'Where You Stand'
무의식·실재·환상의 절묘한 균형. 시간 초월한 또다른 차원의 풍경 선사

안개 속 몽환의 시간을 응시하는 ‘그림자 작가’ 이기봉, 'Where You Stand D-1', Acrylic and polyester fiber on canvas, 186 x 186 cm, 2022. 사진제공 =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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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모호함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호함 자체가 세상의 본질이기도 하고. 그것을 작품의 기본 콘텐츠이자 태도로 제작에 임하고 있다.”


안개 자욱한 자연 풍경을 몽환적으로 담아내는 작가 이기봉이 14년 만의 개인전으로 돌아왔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제갤러리는 12월 31일까지 이기봉 개인전 ‘Where You Stand’를 개최한다.


작가는 회화와 설치를 넘나들며 세계의 본질을 이루는 구조 및 흐름에 대한 관심을 지속해서 탐구하고 실험해왔다. 그의 작업은 지나간 시간, 과거에 대한 향수와 함께 덧없는 순간에 대한 갈망을 역설적으로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에서 작가는 무의식과 실재 및 환상 간 기묘한 균형을 생성한다. 몽환적이라 묘사되는 작가의 화면에 그려진 풍경은 시간을 초월한 또 다른 차원의 풍경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연의 순환과 사라짐에 대한 사색을 담은 신작 ‘바니타스(vanitas)’ 50여 점을 선보인다.


그는 “내가 관심을 갖는 주요 모티브는 물과 안개”라고 소개한다. 이어 “이들은 사물이나 존재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초월적 영역에 다가서게 만든다. 평상시 드러나지 않았던 사물의 다른 측면에서 어떤 정신이나 영혼을 발견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안개 속 몽환의 시간을 응시하는 ‘그림자 작가’ 이기봉, Where You Stand Green-1, Acrylic and polyester fiber on canvas, 186 x 186 cm,2022. 사진제공 = 국제갤러리

이기봉은 ‘실재의 농도’를 변주하며 작업에서 세상을 마주하는 경험을 생경하게 환기한다. 특히 물을 대하는 작가의 방식이 눈에 띄는데, 물은 그 자체로 절대적 형태를 갖지 않고 외부의 대상과 관계를 맺으며 형태와 의미를 발생시키는 속성을 갖고 있다. 작가는 2003년 개인전에서 푸른 물을 담은 수조를 등장시키며 직접적으로 물의 형태를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였다. 2008년부터는 순간적이고 가변적 성격의 안개, 수증기 형태로 꾸준히 물에 대한 작업을 이어왔다.


특히 안개는 습한 산 중턱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30여년간 작업을 이어온 작가만의 독창적 조형 언어로 자리 잡았다. 안개는 관계 속에서 의미를 형성하는 물의 특성을 드러냄으로써, 화면 내 신비스러운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효과를 넘어 인간과 사물, 그리고 세계가 관계 맺는 구조를 가시화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작품 속 흐릿한 질감과 경계는 안개가 피어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이는 캔버스 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플렉시글라스(얇은 아크릴판) 또는 폴리에스테르 섬유를 겹쳐 올려 두 개의 이미지를 덧댄 결과다. 작가는 재현의 대상으로 배경에 등장하는 나무나 호수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물안개’에 주목한다. 안개는 평면에 놓인 복수의 화면의 거리감을 뒤섞고 인식체계를 교란하며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품 속 메시지에 대해 작가는 독일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서 발췌한 텍스트를 제시한다. 20년 전부터 이 책을 읽어왔다는 작가는 “인간은 세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언어나 감각이라는 ‘막’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인식할 수 있다”며 “작품 위에 번거롭게 폴리에스터 천을 덧씌운 것도 이런 주제 의식을 전달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비트겐슈타인의 텍스트는 설치작품 형태로도 전시된다.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서 각각 한 점씩 설치되는 신작 ‘A Thousand Pages’는 한 면의 양각 텍스트를 다른 면의 안료 가루에 찍어 펼쳐 보인 작품으로 마치 펼쳐진 책을 보는듯한 감각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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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을 작동시키는 도구로 분명 존재하는 흐름에 대해 주목한 작가는 인간이란 결국 자신에게 비친 세상을 인식하는 존재라 인지하며, 자신이 변주하고 자각하는 과정을 시각화하는 데 주력한다. 전시는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다른 효과를 감각하고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고 강변한다. 또한, 작가는 이로써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을 스스로 재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로써 회화를 만들며 이것이 작가 스스로 미술가보다는 몽상적인 이미지의 예술을 만들어낸 ‘공학자’라 자청한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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