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대통령 여자친구, 영부인 의무 정부 부처로 이전
“영부인에게도 자율성 필요 … 공식행사 참석 않을 것”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더 이상 영부인이 되고 싶지 않은 영부인. 가브리엘 보리치(36) 칠레 대통령의 여자친구인 이리나 카라마노스(33)의 얘기다.
1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초 기자회견을 열고 영부인직을 개혁한다고 밝힌 카라마노스의 사연을 자세히 소개했다. 독일계 우루과이인 어머니와 그가 8살 때 사망한 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자의 딸인 카라마노스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교육학과 인류학 학위를 취득했으며, 4개 국어에 능통한 페미니스트다.
그는 지난해 12월 보리치가 대통령에 당선된 순간부터 '영부인'이라는 타이틀에 저항했다. 좌파인 보리치는 남미 최연소 지도자이고, 카라마노스는 그의 승리를 도운 운동가였다. 보리치가 3월에 취임할 당시, 카라마노스는 자신이 영부인의 역할을 바꿀 수 있길 희망하면서 마지못해 봉사하기로 동의했다. 그 후 몇 달 동안 카라마노스는 영부인 역할을 재정비하기 위한 물밑 작업에 들어갔다. 6개의 재단 운영, 어린이 보육 네트워크, 과학 박물관 및 여성 개발 조직과 같은 프로그램 감독 등 기존에 영부인이 맡아서 해왔던 일들을 정부 부처 책임으로 바꾸려 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칠레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영부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재편하는 동시에 이러한 재편이 현 대통령 임기 이후에도 지속돼 차기 영부인에게도 적용되기를 바랐다.
8개월 동안 언론 인터뷰를 피해 다닌 카라마노스는 지난달 초 공개석상에서 기자들에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영부인의 제도적 역할은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개혁이 "미래의 영부인에게 직업적이든, 경제적이든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WP는 "카라마노스는 영부인 역할이 자신이 가진 기술이나 경험, 학위와 관련이 없는 '타이틀'일 뿐이고, 자신은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평했다. WP는 퍼스트레이디의 개념은 미국의 것으로, 미국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부인 돌리 매디슨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보았다. 이후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와 존 F.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등이 영부인의 역할을 발전시켜 대통령과 동행하는 행보를 보였고 그 후 남미에도 내조형 영부인이 등장했다고 밝혔다.
전통적인 영부인 역할을 거부한 퍼스트레이디는 카라마노스 외에도 더 있다.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도 영부인 역할을 달가워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에콰도르 라파엘 코레아 전 대통령의 벨기에 태생 아내인 안네 말헤르베 고셀린은 행사에 불참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의 부인인 베아트리스 구티에레스 뮐러 여사는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만 그는 외교 행사에는 대통령과 동행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배우자 질 바이든 여사도 노던 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 작문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남편의 대통령 임기 중 백악관 밖에서 급여를 받는 첫 번째 미국 영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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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노스는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자주 '대통령을 보살피라'는 요청을 한다며 "물론 나는 그를 돌본다. 하지만 내가 안 돌보면 이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고 자급자족할 수 없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힘센 남자는 여자가 옆에 있어야만 믿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균형을 잡고 싶다"며 "앞으로 모든 해외 순방이나 공식행사 등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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