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추운 겨울날 한적한 골목길 가운데에 하얀 눈으로 살짝 덮인 무엇인가가 어슴푸레 보였다. 골목길을 지나던 여대생은 자칫하면 넘어질 뻔했다. 눈으로 미처 가려지지 못한 까만색 머리와 빨간색 브래지어가 확연한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 만져볼 생각도 못 하고 비명만을 질러댔다. 경찰은 현장을 보자마자 강력 사건으로 판단하였다. 36세의 미혼 여성이었다. 모여든 동네 사람 몇몇이 금세 그를 알아보았다. 사망 장소 인근에서 자취하는 직장인이었다. 바로 집 앞 골목에서 옷이 벗겨진 상태로 사망한 젊은 여성의 소식은 좁은 동네를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경찰은 사망자의 사망 전 행적을 조사했다. 시신이 발견되기 전날 사망자는 직장 동료들과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지고 제법 취했지만, 집 앞 좁은 골목 직전까지 택시로 데려다주었다고 증언했다. 택시를 내린 곳에서 불과 10여m 떨어진 골목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 보아 범인이 골목에 숨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정확한 사망 원인을 알기 위해 부검이 시행됐다. 나체 상태로 발견된 사람 특히 여성일 경우에는 더욱 냉정하게 검사를 하게 된다. 전신이 얼어 있어 증거 수집이 어렵지만 생식기와 항문 주위를 살펴보고 유전자 검사를 시행했다. 성폭행의 흔적은 없었고 무릎과 이마에 새로 생긴 피하출혈이 있었으나 넘어지면서 발생한 손상으로 치명적인 외형적 상처로 보이지는 않았다. 시반(屍斑·시체얼룩)은 일반 시신보다는 더 선명한 붉은색을 띠었으며, 피부의 털세움 근육이 수축하거나 굳음으로써 피부가 오돌토돌해져 닭살(cutis anserina)처럼 보였다. 내부 소견에서 심장 왼심실의 혈액이 보다 선홍색이었으며, 위의 점막에서 붉은 출혈(Wischnewsky Spot)이 확인되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는 0.21%로 만취 상태였다. 여러 가지 소견을 종합건대 그의 사망 원인은 저체온사 즉 동사(凍死·Freezing to Death, Death by Freezing)였다.
저체온(低體溫·Hypothermia)은 체열 생산의 감소, 체열 발산의 증가 또는 둘 모두의 작용으로 생긴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방한복을 잘 챙겨 입으면 영하 60도에서도 장시간 견딜 수 있어 동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추운 환경에 있으면 체열 발산, 즉 열을 많이 잃어 체온조절 기능의 한계를 넘으면 저체온증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알코올 즉 술을 먹게 되면 몸이 훈훈해져서 동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몸은 열을 붙들어두려고 하는데 추울 때 사람들이 더 창백하게 보이는 이유는 손실되는 열을 줄이기 위해 혈액을 피부로부터 먼 곳으로 방향을 돌리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알코올은 피부의 혈관을 확장시킨다. 이는 혈류를 증가시키고 따라서 열손실도 늘어나게 된다. 사람들은 알코올을 섭취한 이후 얼굴이 상기되는 것을 보고 혈관이 확장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추운 환경에서 이는 신체에 최악의 조건이 된다. 즉 알코올은 열 손실을 촉진하기에 동사도 재촉하게 된다. 앞서 소개한 사망자도 알코올에 의해 정신을 잃고 자다가 급격하게 사망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동사가 자주 발생하는 다른 원인은 당뇨병이다. 당뇨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을 경우 합병증 중 케톤산이라는 물질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이는 몸속의 당이 제대로 이용되지 않아 지방이 분해되면서 생기는 물질이다. 당뇨병의 합병증 상태에서는 일반인보다 더 쉽게 체열이 빠져나가 영하가 아닌 기온에도 동사로 사망하게 된다.
겨울 찬바람이 불면 법의학자에게는 저체온사가 걱정되는 시기이다. 연말과 연초에 늦은 술자리가 있게 되어 술에 취해 길에서 잠이 드는 사람은 없는지. 그리고 여전히 추운 날씨에 경제적으로 곤궁하고 병든 사람들이 이 겨울을 잘 지낼 수 있는지 걱정이 된다. 많은 사람이 동사 또는 저체온사에 대해 히말라야 등 산악 지대의 사고나 눈밭을 헤매는 등의 사고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이 추운 날씨에 개인적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세상의 시련과 질병으로 바깥에서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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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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