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짐한 양의 순대곱창전골
어르신 맛집에서 'MZ 핫플'로
평일 오후 5시부터 '오픈런'
[아시아경제 전진영 기자] 각자 생활전선에서 고군분투 중인 동기들을 평일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소주 한 잔 곁들이기로 했는데, 글쎄 장소를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인근으로 잡는 것이었다. 어르신들 약속 장소에 진출해야하는 거냐며 한마디 했더니, 종로3가에 'MZ(밀레니얼+Z세대) 핫플'이 있다고 했다. 동기는 "오후 5시 넘어서 도착하면 무조건 줄 서야 하니 그전까지 빨리 오도록 하라"는 말로 장소 논쟁을 끝냈다. 약속 장소는 종로3가역 인근의 '이경문순대곱창'. 가게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몰랐다. 어르신과 젊은이가 한데 모인 기이한 장면이 펼쳐질 줄은.
가게는 부부가 운영하는데, 종로3가에서 귀금속 장사를 하다가 자신 있는 메뉴인 곱창전골집으로 업을 바꾼 게 20년이 훨씬 더 됐다고 한다. 참고로 가게 이름의 ‘이경문’은 여자 사장님 성함이다. 사장님은 "일만 하다 보니 시간이 다 갔다. 언제 가게를 열었는지 정확한 연도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점심에는 순댓국을 팔고, 저녁에는 곱창전골을 판다. 건더기가 듬뿍 들어간 데다 양이 많아 뚝배기에 넘칠 듯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이날 시킨 곱창전골도 가스 불을 켜자 벌건 국물에 피순대와 돼지 곱창, 깻잎이 넘칠 듯 부글부글 끓었다. 수제는 아니어도 당면순대 대신 피순대를 이렇게 많이 넣으면 뭐가 남느냐 하니 사장님은 "물가가 올라도 재룟값은 신경을 안 쓰려고 한다. 많이 먹고 많이 찾아주면 그만"이라고 했다. 국물에는 들깨가 잔뜩 들어가 끓을수록 구수한 맛이 녹아 나왔다. 줄어들지 않는 안주 때문인지 최근 술깨나 먹는다는 유튜버들은 다 이곳을 다녀갔다. 가수 최자가 맛집 소개 방송 이후에도 따로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오후 5시 전에 들어온 우리 팀을 마지막으로, 어느덧 가게 밖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대부분 대학생 또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원래부터 젊은 사람들이 많았느냐고 사장님께 여쭤보니 "한 3년 전부터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요새 가게에 부쩍 많이 오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낮에도 종로를 찾아 일찍부터 술잔을 기울이는 어르신들과 어제 먹은 술을 해장하러 온 직장인들이 섞여 앉는다고 했다. 하긴 속 풀고 술 푸는 일에 나이가 어디 있겠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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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테이블 옆에는 노부부가 앉아 소주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가게 구석에 놓인 육수를 필요한 사람이 가져다 보충해 먹는데, 자연스레 옆 테이블 노부부에게도 “육수 좀 드릴까요”하며 말을 건네게 됐다. 노부부가 술잔을 기울이면 우리도 자연스레 술을 따랐고, 우리가 볶음밥을 시키면 테이블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부부도 밥을 볶았다. 우리의 사는 얘기, 연애와 결혼 이야기, 직장 이야기가 깊어지면 그들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지금의 고민은 나이가 들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까, 우리는 나이가 들면 또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될까. 젊은이 반 어르신 반 가게에서 이날 우리 젊은것들의 사는 얘기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뭘 그렇게 열심히 이야기했는지, 알코올에 날아가 버린 듯 다음날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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