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상표권 상실 사례로 본 IP의 중요성
법적 분쟁 이어가다 결국 상표권 상실
전문가 "지속적 홍보, 적극적 대응 중요"
"상표의 서체, 색채 일관되게 사용해야"
아시아경제-서울과학종합대학원 공동기획
수천억원의 판매고를 올렸지만 상표권을 인정받지 못해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명칭이 있다. 바로 ‘초코파이’다. 경쟁업체들이 하나둘씩 사용하고 대중에게 상품명으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상표권을 인정받지 못한 사례다.
우리나라에선 오리온(당시 동양제과)이 1974년 원형으로 된 작은 크기의 초코파이를 처음으로 출시하고 초코파이를 상표로 등록했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1990년까지 약 2455억원에 달하는 내수 누적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오리온 초코파이가 인기몰이를 하자 후발주자들이 생겨났다. 롯데제과는 1979년부터 초코파이 제품을 생산·판매해 1998년까지 186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크라운제과는 1989년부터 ‘크라운초코파이’ 상표로 연평균 105억원 상당을 판매했고 해태도 ‘해태초코파이’ 상표로 판매하는 등 초코파이 명칭은 제과업계에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어느새 초코파이는 연간 시장규모가 1000억원을 넘어서게 됐다.
문제는 1990년대에 벌어졌다. 본래 10년마다 상표 재등록이 필요한데, 롯데가 상표권을 재등록 하려하자 오리온이 이를 문제삼은 것이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초코파이라면 오리온을 떠올린다"며 다른 업체에서 초코파이란 이름을 쓰는 것은 상표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판부는 오리온뿐 아니라 누구나 초코파이 명칭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즉 초코파이는 이미 상품의 보통명칭처럼 쓰여 식별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비자가 오리온, 롯데, 크라운, 해태 등 기업명만으로도 제품의 출처를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일반인들이 초코파이를 ‘원형의 작은 빵과자에 마쉬맬로우를 넣고 초코렛을 바른 제품’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봤다.
![1000억 시장 '초코파이', 대박난 '불닭'…상표권 잃은 사연[지식재산권이 경쟁력]](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4021909383402165_1.jpg)
엄밀히 따지면 초코파이 스타일의 제품을 오리온에서 최초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이미 미국에서 1917년부터 조그만 원형 모양 빵에 마쉬맬로우를 넣고 초코렛을 입힌 제품이 개발·판매돼왔다.
‘불닭’도 애초에 상표로 등록했지만 수년 동안 업체 간 소송전을 벌이다 결국 효력을 상실한 경우다. 2001년 강원도 원주시의 부원식품 대표 김모씨는 ‘불닭’을 처음으로 상표 등록하고, 매운맛 소스로 닭을 요리한 메뉴를 자사 가맹점에 공급했다. 그러다 2003년 홍초원이 ‘홍초불닭’으로 상표를 등록받고 국내 최대 불닭 프랜차이즈로 유명세를 타자 부원식품이 상표권 무효심판을 제기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이 역시 법원에서 결론은 불닭의 상표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났다. 당시 불닭이 일종의 ‘신조어’처럼 사전엔 등재되진 않았지만 일반적인 표현으로 널리 쓰이고 있고, 신문·방송 등에서도 매운 닭고기 요리의 일종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20대 이상 성인 600명을 대상으로 불닭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3%가 불닭을 특정인의 상표가 아닌 보통명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코파이, 불닭 같은 사례를 상품의 보통명칭 또는 관용표장화됐다고 말한다. ‘요요’ ‘드라이아이스’ ‘앱스토어’도 처음엔 상표였다가 식별력을 상실해 관용표장화된 사례다. 해당 상표가 너무 유명해져서 타사나 개인이 자유롭게 사용한 결과 상표권을 보호받지 못하게 된 경우다. 상표의 가치가 사라졌다고도 볼 수 있다.
![1000억 시장 '초코파이', 대박난 '불닭'…상표권 잃은 사연[지식재산권이 경쟁력]](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09061809310415207_3.jpg)
상표권을 인정받지 못하면 분쟁에 휘말렸을 때 침해 인정을 받기 어렵다. 그렇다면 상표권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피부과에서 사용되는 의약품인 ‘보톡스’는 보통명사처럼 쓰이지만, 사실 유명 제약업체의 상표다. 이 제약업체는 상표권을 지키기 위해 언론사들이 관련 보도를 다룰 때 일반명사인 ‘보톨리눔 톡신’이라는 표현을 써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
김지우 다선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해당명칭이 상표라는 사실과 별도의 상품명을 알리는 지속적인 홍보가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무단으로 상표를 상품명처럼 사용할 경우 발견 즉시 신속하게 상표권 침해 금지를 청구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 내부에서 올바르게 상표를 사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최성우 특허법인 우인 변리사는 "기업 스스로 상표를 잘못 사용해서 일반인들로 하여금 그 상표가 일반명칭인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출원 중인 상표에는 TM, 등록한 상표에는 ®표시를 붙여 사용하고, 상표의 서체·색채를 일관되게 사용해 그것이 상품의 일반명칭이나 별칭이 아니라 상표임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식재산이 경쟁력] 기획을 마치며
이 주제를 아시아경제와 공동기획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고영희 교수는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지식재산제도를 최대한 활용해 기업내 지식재산권(IP)을 중심으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본 기획을 통해 국내외 다양한 기업들의 특허, 저작권, 영업비밀, 상표권 등의 지식재산 전략과 우리 기업의 현실들을 살펴봤다"며 "우리 기업들은 자사의 IP 포트폴리오를 핵심 자산으로 관리하고 이를 통한 수익과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전략적 관점이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국내 지식재산제도와 정책이 법적 관점에 머무르지 않고 기업전략과 산업관점을 깊이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변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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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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