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도매가격(20Kg) 21.6% 하락하는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6.3% 상승
쌀값 대책·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농업예산 확충·농산물 수입 즉각 중단 요구
작년 쌀 37만톤 격리에도 가격 '뚝뚝'…4개월 뒤 매입 완료해 '실기'
국회 '양곡관리법' 개정안 발의…野, 쌀값 폭락 문제 '당론' 채택 가능성도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 쌀값이 작년대비 20%이상 폭락했다. 45년 만의 최대 낙폭이다. 농민들은 벼농사가 풍년인 올해 전북 김제, 영광 등 각지에서 '쌀값폭락'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표시로 밭을 갈아엎었다. 쌀 한 공기에 220원, 하루 세 끼 다 해도 600원대인 지금의 쌀 가격으론 인건비, 비료값도 대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정부 입만 바라보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상승기에서 물가안정을 꾀해야하는 당국으로선 뾰족한 수를 내놓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선 쌀 소비 감소에 따른 예측 실패 책임을 정부에만 떠넘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쌀 이외 작물을 재배해 쌀 소비량 감소에 대응했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대체작물로 바꾸라는 것은 결국 벼 농사는 그만 두라는 말밖에 되지 않아 미래 식량산업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반론이 나온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곡물 80% 이상을 수입산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곡물자급률이 90%를 넘는 것은 쌀밖에 남지 않았다. 국회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쌀값 폭락에 대응하기 위한 입법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 당론 채택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밥 한 공기(100g) 쌀값 300원→220원, 하루 두 끼 400원…물가 다 올랐는데 쌀값만 하락"
잦은 병충해와 집중호우에 피해보진 않을까 애면글면하며 일궈온 벼 농사였지만, 추석을 앞두고 제 손으로 뭉개게 될 줄은 몰랐다.
30일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수확기를 앞둔 농민들이 정부 항의 표시로 콤바인(곡물 수확 차량) 대신 트랙터로 벼를 갈아엎고 있다"면서 "쌀값 하락에 정부 대책을 바라고 있지만 묵묵부답"이라고 말했다. 하 의장은 "쌀을 한 공기(100g) 가격으로 따지면 작년 300원가량에서 지금은 210~220원까지 떨어졌다"며 "인건비, 비료값이 다 올라서 작년 수준만큼 받는다고 해도 적자"라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달 15일 기준 쌀(정곡) 20Kg 산지 가격은 4만2522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3.6% 하락했다. 2018년 이후 최저가로, 낙폭은 45년 만에 최대치다.
소비자물가는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쌀값만은 하락했다. 한국농수산식품공사 농산물유통정보를 보면 쌀 도매가격(20Kg)은 전년동기 5만8860원에서 4만6150원으로 21.6% 떨어졌다. 같은시기 소비자물가지수는 102.26에서 108.74로 6.3% 올랐다.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작년 수준으로 판매해도 적자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한국 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회원 1만여명은 29일 서울 용산에서 쌀값 보장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들은 쌀값 대책 마련·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농업예산 확충·농산물 수입 즉각 중단 등을 요구했다.
특히 올해 수매 대책과 가격 하락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지만, 지난해 결정된 시장격리조치 외에 별도 추가 대응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당장 올해 햅쌀을 저장해야할 미곡종합처리장(RPC)에는 작년 쌀이 가득 차 있어 올해 추수한 쌀이 갈 곳을 못잡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쌀값하락, 27만톤+추가 격리에도 왜 떨어지나…시기·방식·통계 등 '3박자' 모두 문제
문제는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추가 하락' 기대 때문에 제 가격을 받기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쌀 27만톤을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결정했다. 가격 하락에 따른 농민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한 선제조치였다. 그러나 실제 낙찰된 물량은 절반 가량에 그친 데다가 낙찰가도 산지 쌀값보다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농해수위 소속인 서삼석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작년 12월28일 정부는 쌀 20만톤을 선제격리하고 7만톤은 시장상황에 따라 추진하기로 했지만 매입이 완료된 시점은 이로부터 한참 뒤인 올 4월8일이었으며, 낙찰된 물량도 14만5000톤으로 당초 목표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선제조치'라는 말이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농가경제 안정을 위한 대책이었지만, 최저가입찰을 통한 '역공매방식'으로 진행해 평균 낙찰가격(2월)은 17만7100원(80Kg 정곡 기준)으로 추정됐다. 당시 산지 쌀값이 20만2000원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5%가량 낮은 가격에 사들여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2차 시장격리는 4월27일 12만6000톤이 추가 결정됐지만, 5월16일 입찰결과 낙찰물량은 12만6000톤에 그쳤다. 매입이 완료된 시점은 이로부터 두 달여 뒤인 7월20일이었고 평균 낙찰가는 16만8500원으로 이 역시 당시 산지쌀값 18만6200원(5월)보다 9.5%가량 낮은 가격이었다. 이어 7월1일에도 추가로 10만톤의 3차 격리를 결정했지만 그럼에도 쌀값 하락은 잡지 못해 지속 하락하고 있다.
서 의원실 측은 시기·방법·통계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서 의원실 측은 "작년 농해수위에선 10월부터 선제적으로 시장격리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12월에 와서야 이를 결정했고, 매입완료까지는 4개월이나 걸려서 올해 이뤄졌다"며 "이 사이 가격은 이미 떨어질대로 떨어져있었다"고 꼬집었다. 또한 "27만톤이 과잉생산됐다고 봐서 그만큼의 물량을 격리하기로 한 것이었는데, 3차 추가 격리까지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10만톤 많은 37만톤 가량을 격리했는데도 가격을 잡지 못했다"며 "애시당초 생산량, 수요량 등 통계를 내는 것부터 잘못 산정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쌀값 폭락시 시장격리 의무화…국회 '양곡관리법' 개정 목소리
국회에선 야당 농해수위 의원을 중심으로 쌀값 폭락시 쌀 자동시장격리를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미곡의 매입요건을 법률로 상향하고,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농림부장관이 농협 등에게 초과 생산된 쌀에 대해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수요량을 초과하는 쌀 생산량이 3% 이상 되어 가격이 급락하는 경우, 수확기 가격이 평년대비 5%이상 하락하는 경우 초과생산량 범위 내에서 정부가 쌀을 매입할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임의규정·선택규정이다보니 쌀 시장격리가 요구되는 상황이 와도 농림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다.
윤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정부가 양곡 수매시 수요·공급을 제대로 산출해서 실효성 있게 격리해야 효과가 있는데, 작년 11월에 했어야 하는 시장격리를 올 상반기에 함으로써 실기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쌀을 격리해서 생기는 기회비용이 8000억원인데 선제 대응을 하게 되면 2000억~3000억원이면 된다"면서 "정부가 실상을 보다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에서는 새로 꾸려진 지도부가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쌀값 폭락 문제를 짚어왔던만큼 당 차원에서 논의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당 대표는 지난 21일 전남 강진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쌀값 하락에 대해 "농업은 국가의 안보를 위한 전략사업으로 반드시 보호, 육성돼야 한다"고 했고 정청래, 서영교, 박찬대 최고위원 등도 지역 순회 경선 과정에서 쌀값 폭락 문제를 지적하며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은 6월13일 '쌀가격 안정을 위한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지난 1일엔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쌀값 대책 논의를 가졌고, 22일에는 우상호 전 비대위원장이 비대위회의에서 정부에 '추석 전 10만톤 추가 격리'를 촉구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다음달 1일 쌀값 정상화TF를 통해 농림축산식품부,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가 참석하는 쌀값 안정화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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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수진 민주당 대변인은 오전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전일)민주당 농해수위 소속 의원들이 '쌀값 폭락에 대한 대책 마련 촉구' 농민 총궐기대회 참석해 농민들의 어려움에 대해 충분히 발언했다"면서 "이번주 목요일에 민주당 쌀값TF 정책 간담회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한 의원은 쌀값 폭락 문제와 관련해 "(당론으로 채택할지 여부는)지도부에서 결정할 일이지만, 현 상황을 봤을 때 당론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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