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0원대 환율에 면세 담배 시중가 추월
외산 궐련형 담배 4만5100원…판매 중단
화장품 등 다른 품목도 비슷…위스키는 영향 덜할 듯
면세업계 '긴장'…고환율에 고물가 겹쳐 소비 위축 우려
정부, 추석 전 관세법 시행규칙 개정안 시행 예정
[아시아경제 송승윤 기자] "면세점에서 담배를 살 이유가 없죠."
직장인 김현선씨(38·가명)는 최근 제주도로 휴가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담배를 사기 위해 면세점에 들렀지만 빈손으로 비행기를 탔다. 외산 궐련형 전자 담배 한보루를 구매하려고 했는데 가격을 보고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한보루 기준 시중가와 고작 500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탓에 구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다. 김씨는 "500원 때문에 짐이 늘어나는 게 오히려 불필요하게 느껴진다"면서 "환율이 많이 올랐다곤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이 2009년 이후 13여년 만에 1340원대를 넘어서면서 시중가를 턱 밑까지 추격하던 면세 담배 가격은 이제 시중가를 넘어서게 됐다. 소비자 입장에선 면세점 필수 구매 품목으로 여기던 면세 담배를 면세점에서 살 이유가 없어졌다. 원·달러 환율을 적용하면 시중가보다 더 비싸지는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해서다. 일부 외산 담배 브랜드는 면세 가격이 더 비싸진 아이러니한 상황에 일시적으로 면세점 판매까지 중단한 상태다.
23일 면세업계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원·달러 환율은 1345원으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340원대를 돌파했다. 면세점에서 파는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의 외산 전용 담배 ‘히츠’ 한 보루 가격은 34달러인데 이 환율을 적용하면 면세점에서 구매하는 가격은 4만5730원 수준이 된다. 시중에서 파는 가격인 4만5000원보다 오히려 비싸지는 것이다. 이날 기준 JDC면세점에선 실제론 가격이 4만5100원으로 책정됐는데 고환율의 영향으로 시중가보다 비싸진 탓에 면세점에서 판매가 일시 중단된 상태다. BAT코리아의 외산 궐련형 전자담배 글로 역시 마찬가지다. 국산 담배는 원화로 계산하기 때문에 3만8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가격 메리트가 없어진 탓에 가격이 역전된 제품의 경우 일시적으로 판매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환율이 내려 다시 시중가보다 가격이 낮아지면 판매를 재개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담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담배를 비롯해 명품이나 화장품 등도 비슷하다. 가격이 달러로 책정되는 면세가 특성상 세금을 제외하고도 국내 판매 제품보다 비싸거나 비슷해 가격 메리트가 없어진 상황이다.
다만 위스키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적으로 고환율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경쟁력 있는 품목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위스키는 시중에서 구매하면 관·부가세 외에도 주세와 교육세 등 약 160%의 세금이 붙는데 면세점에서 사면 많이 저렴해진다. 현재 발렌타인 30년산의 면세 구매 가격은 47만6400원 수준인데, 시중에선 리쿼숍 등에서 할인가를 적용해도 50만원 중 후반대에 팔린다. 가격 메리트가 크게 없더라도 일부 브랜드의 경우 위스키 자체를 구하기 어려워 품귀현상마저 일어난 상황이라 구매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것이다. 더욱이 추석 전 관세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시행을 목전에 둔 상황이라 술 면세 한도가 1병에서 2병으로 늘어나게 돼 주류 소비는 더욱 활성화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실제로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제주관광공사(JTO) 지정면세점 매출 현황을 보면 두 곳의 매출액 중 주류의 비중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JDC 면세점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 3519억4900만원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품목은 위스키 발렌타인 30년산으로 129억2580만원에 달했다. JTO 지정면세점의 매출 상위 품목도 마찬가지로 주류가 90억6724만원으로 매출 1위 자리를 지켰다.
한편 정부는 최근 추석 전 면세 한도를 상향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관세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면세 업계도 내국인 고객의 혜택 늘리는 방향의 프로모션을 이어갈 예정이다. 다만 고환율이 이어지는 상황이라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진 미지수다. 일각에선 환율 급등에 고물가 상황이 겹쳐 소비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송승윤 기자 kaav@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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