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간 치료 받았으나 뇌출혈로 운명…조문 8일부터
영화계 영화인장 장례위원회 꾸려…위원장 김동호
배우 강수연 씨가 7일 오후 3시께 별세했다. 향년 55세. 강 씨는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에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사흘째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사인은 뇌출혈이다.
강 씨는 1980~1990년대 한국영화계를 풍미한 배우다. 네 살 때 아역으로 데뷔해 50여 년 동안 영화 약 쉰 편에 출연했다. 20대 초반부터 강한 집념으로 연기를 갈고닦아 독창적인 표현 세계를 구축했다. 열연은 한국영화의 국제적 도약과 직결됐다. 그는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1987)'에서 비극적 운명을 살아가는 대리모를 연기해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모순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 얻은 결과였다. 한국 배우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칸·베네치아·베를린) 트로피를 품어 '월드 스타'라는 칭호가 붙었다.
이 시기에 강 씨는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였다. 영화 서너 편을 동시에 촬영할 정도였다. 특히 1987년에는 개봉한 작품만 여섯 편에 달했다. '연산군', '감자',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됴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등이다. 그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뽐냈다. 이후에도 과감한 도전으로 전형성을 탈피해 다양한 업적을 이뤘다. 대표적 성과로는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로 받은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이 꼽힌다. 머리를 삭발하고 세속에서 중생을 구원하는 대승적 수행을 그려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1990년대에는 '코리안 뉴시네마'의 한 축을 담당했다. 박광수, 장선우, 이현승 등 연출자들과 '베를린 리포트(1991)',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 등을 합작했다. 1991년에는 대만 영화 '낙산풍'에도 출연했다. 한국 배우의 해외 진출이 거의 없던 시절에 감행한 놀라운 도전이었다. 강 씨는 페미니즘 계열로 분류되는 영화들의 선구자로 거론되기도 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에 출연하며 사회·문화적 흐름을 이끌었다. 일찍이 해외 영화제를 오간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 행정 업무도 도맡았다. 특히 2015~2017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올해는 지난 1월까지 연상호 감독의 신작 '정이'를 촬영했다.
영화계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영화인장 장례위원회를 꾸렸다. 배우 김지미·박정자·박중훈·손숙·안성기·신영균, 영화감독 이우석·임권택·정지영·정진우, 영화제작자 황기성 등이 고문으로 참여한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 17호에 마련됐다. 조문은 8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11일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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