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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웅의 에너지전쟁] 석유와 가스는 러시아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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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생산량 세계 3위
천연가스는 세계 2위 러시아

각국 공급중단 조치 땐
1차 오일쇼크 버금가는 충격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지만…

러시아산 석유·가스 등 신뢰도 저해할 뿐 아니라
각국 대체재 찾으려는 노력 가속
장기적으론 러시아에도 악영향

편집자주아시아경제신문은 한 달에 한 번씩 목요일자에 대변혁기를 맞은 에너지 산업을 진단하고 그에 얽힌 국제 질서 변화를 짚어보는 '최지웅의 에너지전쟁'을 연재합니다. 저자는 2008년 한국석유공사에 입사해 유럽·아프리카사업본부, 비축사업본부에서 근무하다가 2015년 런던 코번트리대의 석유·가스 MBA 과정을 밟은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 입니다. 석유의 현대사를 담은 베스트셀러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를 펴냈습니다.

[최지웅의 에너지전쟁] 석유와 가스는 러시아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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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자원 부국이다. 원유 생산량은 세계 3위, 천연가스는 세계 2위. 러시아의 국력과 경제력 대부분은 에너지 자원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러시아의 핵심 이익은 석유와 가스의 안정적 수출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다. 돌려 말하면 러시아를 견제할 가장 강력한 수단도 석유와 가스를 불매하는 것이다. 석유와 가스는 러시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이 상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했을 수많은 계산에 반영됐을 것이다. 러시아는 서방이 러시아의 석유·가스 거래를 절대 끊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는 다른 산유국이 대체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석유와 가스 합산 물량으로 따지면 중동 최대 산유국 사우디의 생산량을 능가한다. 유럽이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를 수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유럽의 에너지 쇼크를 넘어 세계적 에너지 가격 상승을 촉발할 것이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인플레이션 조짐을 보이는 세계 경제에 거대한 충격이 된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때 아랍 산유국이 석유 무기화를 위해 감산한 물량은 매달 전월 대비 불과 5% 수준이었다. 많은 물량으로 오일쇼크를 야기한 것이 아니다. 지금 러시아가 전면적인 석유·가스 공급 중단을 단행한다면, 오일쇼크 이상의 충격을 줄 수도 있다. 물론 러시아도 경제 붕괴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세계 최대 산유국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이 많지 않아서 러시아산 석유의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 의존도가 큰 유럽 국가들이 같은 조치를 실행한다면 과거 오일쇼크 이상의 충격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네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석유와 가스 제재가 실현될 경우 "유럽은 멋진 신세계에 진입할 것"이라고 반어적으로 말한 배경이다. 한국도 러시아로부터 적지 않은 원유를 수입한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원유 수입량 중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5.6%(5375만배럴)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1973년 10월 아랍의 이스라엘 침공, 즉 4차 중동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1970년대에 유럽과 일본 등은 전후 재건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산업화를 진전시키면서 원유 소비량을 급격히 늘려갔다. 따라서 에너지 공급의 작은 공백도 엄청난 충격이 될 수 있는 시기였다. 자연스럽게 아랍의 석유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이때 아랍은 이스라엘을 침공했고,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과 그 우방국에 대응해 석유 감산을 단행했다. 이후 유가는 4배가량으로 폭등했다. 그 결과 세계는 1차 오일쇼크의 충격을 겪어야 했다. 미국의 국민총생산(GNP)은 무려 6% 감소했고, 일본도 전후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최지웅의 에너지전쟁] 석유와 가스는 러시아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최지웅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 연구원

러시아도 자국의 석유·가스가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부작용은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1차 오일쇼크 직후, 세계 각국은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다각적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은 알래스카와 멕시코만에서 석유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영국은 북해를 본격적으로 개발하면서 훗날 국제유가의 벤치마크 중 하나가 되는 브렌트유를 생산하게 된다. 또 프랑스는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고자 원자력 발전 확대에 매진하면서 2020년 기준 발전량의 65.7%를 원자력에서 얻고 있다. 1970년대의 이러한 노력은 1980년대의 장기 저유가를 야기했다. 이때의 저유가는 석유에 의존하는 소련 경제에 치명타를 안기며 1991년 소련 붕괴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 지금 러시아에 의한 고유가 기조는 러시아산 석유·가스의 신뢰도를 저해할 뿐만 아니라 대체재를 찾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장기적으로 러시아 석유·가스 산업에도 좋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보다 더 중요한 교훈이 있다. 21세기 이후 현대 전쟁사의 가장 큰 교훈은 ‘군사적 점령’보다 몇 배 더 어려운 것이 ‘행정적 통제’라는 것이다. 2003년 이라크전 때 미국은 압도적 화력으로 바그다드를 불과 20일 만에 점령했다. 당시 미국이 이라크전을 벌인 중요한 이유는 사우디를 방어하기 위함이었다. 글로벌 석유 공급자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우디가 반미 세력에게 넘어가는 것은 미국의 패권에 큰 위협이 된다. 따라서 사우디를 반미의 이란, 시리아 등으로부터 방어하는 완충 지대로서 이라크가 필요했다. 당시 미국의 목표도 반미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고, 새로운 친미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령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에 미국은 이라크에서 4000여명의 미군 사망자를 내고, 1000조원이 넘는 재원을 쏟아부었음에도 행정적 통제에 실패했다. 2014년 이후에는 이라크에 이슬람국가(IS)마저 창궐하며 미국을 곤혹스럽게 했다. 또한 지금의 이라크 정부도 미국을 적대시하는 이란과 같은 시아파가 장악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의도도 우크라이나를 행정적으로 통제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로부터 러시아를 보호하는 완충 지역으로 남겨두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러 정부를 수립해야 하고, 그것이 궁극적 목표다. 그러나 현대 전쟁사는 그것이 군사적 점령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는 이라크보다 큰 나라다. 또한 러시아는 미국만큼 인력과 재원이 풍부한 나라도 아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의도대로 통제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설령 점령이 가능하더라도 세계 여론과 우크라이나의 반러 정서는 그 점령의 의미를 무색하게 할 것이다. 러시아는 이라크전의 교훈뿐만 아니라 과거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의 교훈을 잊고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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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웅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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