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등 5개 계열사 작년부터 기다려
승인절차 더뎌지자 기업들 "연연 안 해"
한국형 RE100 실천·탄소저감 사업 강화
[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영국의 비영리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이 주관하는 'RE100' 가입 승인 절차가 더뎌져 기업들이 속앓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RE100 가입에 집착하기보다 한국형 RE100 실천, 탄소저감 사업 강화 등을 강화하겠다는 기업도 적잖게 늘고 있다. RE100은 재생에너지로 얻은 전기로만 제품을 만드는 캠페인이다. 석탄화력발전과 석유는 물론 수소, 연료전지 등 '신에너지'도 안 되고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만 써야 한다.
24일 산업계와 RE100 한국지역 파트너인 국제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등에 따르면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현대트랜시스 등 5개 계열사가 지난해 7월 말 가입 발표 후 더 클라이밋 그룹의 가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가입 발표는 그룹 차원에서 했지만 신청 절차는 각 계열사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탄소저감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따로 밟고 있다. 모비스는 7월 말, 위아는 8월 초께 가입적격성 자료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가입 승인을 담당하는 더 클라이밋 그룹과 CDP 등에서 진행하는 승인 절차가 더뎌지고 있다는 점이다. CDP 한국위원회 관계자는 "현대차 계열사의 경우 가입 승인 검토 중이며 승인 시점에 대해선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더 클라이밋 그룹과 CDP 등은 RE100 규준(criteria)에 따라 가입 신청 기업의 주요 사업, 탄소 배출량 등을 꼼꼼하게 따지는 걸로 유명하다. 석탄화력발전사, 정유사 등은 가입 대상에서 제외된다. 석유화학 기업 등도 주요 사업과 탄소 배출량 등을 제대로 검증받아야 한다. 지주사처럼 직접 탄소배출을 하지 않는 업종이라도 계열사 중 석탄화력발전사나 정유사 등이 있으면 가입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 특히 더 클라이밋 그룹이 가입 기업을 늘리지 않을 방침으로 선회하면서 가입 승인이 더 까다로워지는 양상이다.
CDP 한국위원회 관계자는 "(SK가 국내 최초로 가입한) 재작년까지만 해도 우리가 기업에 가입을 권유했지만 이젠 주요 기업 다수가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우리도 지나치게 많은 기업을 받지 않을 계획"이라며 "가입만 하고 실천은 안 하는 식으로 RE100을 '그린 워싱'(친환경 이미지로 위장) 수단으로 악용하는 기업들이 늘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기업들은 RE100 가입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70%를 차지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한국형 RE100' 실천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LG화학도 최근 남동발전과 RE100 달성 공동 대응 업무협약(MOU)을 맺었지만, 이와는 별개로 글로벌 RE100에 가입할 지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유사라 RE100 가입 자체가 불가능한 SK에너지도 주유소에서 재생에너지를 자체 생산해 전기차 충전기에 공급하는 '에너지 슈퍼 스테이션' 사업 같은 'RE100 관련 활동'엔 적극적이다. GS칼텍스는 2020년 9월 한전과 일찌감치 MOU를 맺고 전국 2800여개 주유소 전기차 충전소 설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RE100 가입은 유럽 등 해외에 사업장이 있는 일부 주요 기업들의 리스크 헤징(위험 회피) 전략으로 생각할 뿐 가입 자체에 연연하진 않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이어 "RE100 가입보다는 기업의 자체 탄소중립 매뉴얼을 바탕으로 친환경 사업을 하되 2023년, 2025년에 유럽과 미국에서 각각 시행되는 탄소국경세 제도와 배출권거래제 가격 현황 같은 주요 이슈에 그때 그때 대처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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