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통계청에서 발표된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2020년 타인에 의한 사망, 즉 타살은 386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굉장히 적은 숫자이다. 통계적으로 해석하면 매년 인구 10만명당 1명 이하의 살인이 발생하는데 일본을 제외한 미국 등의 선진국과 비교하면 굉장히 낮아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론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접하게 되면 잠깐이지만 섬뜩함에 몸서리치곤 한다.
교살이든, 흉기에 의한 살인이든, 독극물에 의한 살인이든, 조작되지 않는 한 피해자의 신체는 그 살인이 어떠한 형태로 이뤄졌는지에 대해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익사나 독살과 같이 외상이 전혀 없는 상황을 가장해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 부검을 하지 않는 한 정확한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다. 유족 또는 보호자가 부검을 반대하는 경우, 정확한 사인이 규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족의 말만을 믿고 그대로 사망진단서를 발급해 시신이 화장되거나 매장된다면, 사건은 영원히 미제로 남게 된다. 때로는 사망 원인이 죽음 당시에는 확정되지 않고 시간이 흘러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익사란 밖에서 들어온 액체(溺水)가 기도에 흡인돼 기도 말단이나 폐포를 막음으로써 생긴 질식사망의 한 종류이다. 대개 강이나 바다와 같은 곳에서 익사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때에 따라서는 고의로 물에 잠기게 해서 물을 흡입하게 하는데 이는 일종의 고문으로 우리가 기억하는 1987년의 박종철 열사의 죽음도 이와 맥락이 닿아있다.
어느 날 한 형사가 찾아왔다. 지역 무용학원에 관련한 사건 때문이었다. 형사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한 무용학원은 무용수의 꿈을 키우던 고등학생이 다니는 입시 전문학원이었다. 학원생들은 총 6명이었는데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수업이 끝나면 5명의 학생들이 무용을 배우고 나머지 1명은 학원에서 숙식을 하며 지내는 작은 학원의 규모였다. 학원생 A양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원에서 숙식을 하는 중이었다.
어느 날 A양이 화장실에 씻으러 갔는데 한참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다른 학원생과 원장은 문을 두드렸는데 소리가 없자 문을 열고 들어가서 A양이 의식이 없는 상태로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119에 신고하고 구급대원은 심폐소생술을 진행하면서 인근에 있는 작은 병원으로 A양을 이송했다. 병원의 의사는 의식이 없고 심장이 뛰지 않는 A양에게 사망진단을 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가슴 CT를 찍은 후 자신은 사망 원인을 정확히는 모르겠고 부검을 해야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화장실에서 쓰러져 사망한 10대 여고생의 사망 원인이 무엇일까? 의사의 권유에 따라 부검을 실시했다. 부검은 오랜 경력의 베테랑 의사에 의해 실시됐다. A양의 몸에는 상처가 많았다. 그렇지만 학원 원장은 A양이 가정형편이 불우해 가끔씩 정서가 불안할 때 자해를 해서 자신이 말렸다는 이야기를 하며 안타까워했으며 경찰도 이를 받아들였다. 부검 결과는 2주 뒤에 경찰서에 발송됐고 사망 원인은 미상 즉 ‘알 수 없다’고 기재돼 있었다.
몇 년이 흐른 후 경찰이 받아 본 투서에는 학원 원장이 당시 6명의 학생들을 학대했고 사망한 A양은 물이 담긴 비닐에 얼굴을 억지로 집어넣고 학대하다가 사망했는데 진실을 이야기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해서 그때는 두려움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부검까지 실시했는데 그럴 리가 없고 뭔가 정서가 불안한 사람이 보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내용이 너무도 구체적이라서 그냥 지나치기에는 뭔가가 꺼림칙해서 검찰과 의논을 해서 재감정을 받기로 결정하고 찾아 온 것이었다.
당시 부검감정서와 그 사진 그리고 가슴의 CT를 찍은 영상 자료와 수사 자료를 살펴보았다. 부검 사진에서 코와 입에서 잘고 흰 거품(비교적 신선한 익사체의 반에서 볼 수 있는 소견으로 폐포 안에 들어온 물이 기도 및 폐의 점액에 섞이고 공기와 함께 경련성 호흡운동이 있을 때 휘저어져(攪拌) 생기는데 심폐소생술을 하면 더 자세히 보인다)이 보였고 폐는 물이 차서 폐 내에 있던 공기가 폐의 가장자리로 밀리는 수성 폐기종이 사진에서 보였다. CT를 찬찬히 보았다. 기도와 폐 기관지 근위부에 물이 차 있는 소견이 보였으며 양쪽 갈비뼈에 오래된 골절이 보였고 머리에도 두피하 출혈이 보였다. 전형적인 익사와 학대의 소견이라고 판단했다.
며칠 후 경찰에게 감정서를 전달했을 때 경찰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경찰과 검찰의 추가적인 수사를 통해 당시 학원의 다른 학생 5명을 대상으로 회유와 협박으로 입막음을 하고 이후에도 상당기간 학대를 한 것이 확인됐다. A양이 사망한 후 5년의 시간이 지나가 학원은 문을 닫았고 미혼이었던 원장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평범한 엄마가 됐고, 당시 학원을 다녔던 나머지 5명의 학생들은 성인이 돼 각자의 삶을 살다가 그중 한 명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경찰에 투서를 넣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은 폭행치사, 특수상해, 공갈, 상해, 강요, 아동복지법위반(아동학대), 특수폭행까지 7개 혐의를 적용하여 원장을 기소했다. 1심에서는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죄를 반성하며 전과가 없다며 7년을 선고했다. 검찰과 원장은 모두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를 했고 항소심에서는 무자비한 행위로 고귀한 생명이 제대로 피어보지 못하고 희생됐다며 오히려 형량을 1년 늘려 8년을 선고했다. 최초 감정서를 배부하고 2년이 지난 후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양형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정의가 실현됐다는 점에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아직도 아쉬운 점이 있다. 왜 그 경험 많은 의사는 익사를 잡아내지 못했을까? 아마도 그건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화장실에서 쓰러졌다는 진술이 의사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다. 익숙한 일을 계속하다 보면 ‘척 보면 안다!’라는 느낌이 생길 수 있지만 우리는 일을 할 때 그런 느낌이 오히려 정확하고 올바른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되새겨야 할 듯하다. 초심을 가지고 자신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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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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