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그렇게 무연고자가 된다
서울시립묘지 용미리 제1분묘 무연분묘들
10년 전 안내문 그대로…잡초·이끼들 무성
비조성 묘역에 방치된 이들
죽어서도 버려진 무연분묘
연고자가 없거나 방문하지 않아 장기간 관리되지 않은 묘지, 무연분묘는 서울시립 용미리 제1묘지에만 511기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무연분묘 주변으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는 모습. 사진=유병돈 기자 tamond@
[아시아경제 특별취재팀=고형광 팀장, 유병돈 기자, 정동훈 기자, 이정윤 기자] ‘알림.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1조…’
우거진 잡초와 나무들을 헤치고 들어간 곳에 난데없이 꽂혀있던 안내문의 첫 문구다. 수풀 속에 서 있던 노란 팻말만이 이곳이 묘지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묘지 주변으로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고, 이따금씩 보이는 비석에는 벌집이나 이끼가 잔뜩 낀 채 한 눈에 봐도 수년간 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묘지임을 방증했다.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떨어진 또 다른 묘지. 안내 직원조차도 묘지를 찾지 못해 길을 헤맬 정도로 외딴 곳에 있었다. 가까스로 묘지를 찾았지만 그 곳으로 향하는 길조차 나뭇가지와 잡초들로 꽉 막혀 있었다. 그렇게 마주한 이 묘지에는 안내 팻말 1개가 아닌 2개가 꽂혀 있었다.
“10년 전에 꽂아놓은 안내문입니다. 10년 전부터 이 상태였다는 거죠.”
설명하는 안내 직원의 목소리에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안내 직원의 말대로 안내문 중 1개에는 ‘2011년 11월’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누구도 이 묘비를 찾지 않은 덕인지, 안내문만은 훼손되지 않은 채 묘지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연고자가 없거나 방문하지 않아 장기간 관리되지 않은 묘지, 무연분묘는 서울시립 용미리 제1묘지에만 511기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무연분묘를 찾아 가는 길은 좁고 험했다. 사진=유병돈 기자 tamond@
무연분묘. 연고자가 없거나 방문하지 않아 장기간 관리되지 않은 묘지를 뜻한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시립묘지 가운데 용미리 제1분묘(경기 파주시 광탄면 소재)에만 511기의 무연분묘가 있다. 제1분묘 전체 묘지 수가 3만1418기임을 감안하면 1.6%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중 취재진이 찾아간 10여개의 무연분묘는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이었다. 또 대부분은 이곳에 묘지가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관리가 안 되고 있었다. 바로 옆 묘지에는 가족들이 놓고 갔을 조화가 가득 찬 반면, 무연분묘 주변은 잡초와 거미줄만 무성할 뿐이었다. 세상과 이별한 뒤, 그리고 땅에 묻힌 채 가족에게 버림받은 무연고자들의 모습이었다.
이날 무연분묘를 안내한 서울시설공단 직원은 "묘지 관리 비용 등이 장기간 미납되면 이렇게 무연분묘로 지정된다"면서 "우편물 등으로 안내하지만, 가족이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전화 연결은 되지 않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안내 직원은 "90% 이상이 011, 017 등 오래된 전화번호라 통화가 되지 않는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연고자가 없거나 방문하지 않아 장기간 관리되지 않은 묘지, 무연분묘는 서울시립 용미리 제1묘지에만 511기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무연분묘 비석에 오물이 묻은 채 장기간 관리되지 않은 모습이다. 사진=유병돈 기자 tamond@
무연분묘의 상당수는 관리 책임이 유족에게 있는 ‘비조성 묘역’에 자리하고 있다. 서울시설공단이 관리하는 ‘조성 묘역’은 벌초 등 기본적인 관리가 이뤄지지만, 비조성 묘역의 경우 유족이 직접 관리하지 않는 이상 삽시간에 잡초가 자라난다. 육안으로 파악했을 때 장기간 방치되었거나 관리가 되지 않은 이런 묘지들은 십중팔구 ‘무연분묘’로 지정된다. 그 숫자가 용미리 제1분묘에만 511기인 셈이다.
서울시설공단은 2019년 일제조사를 실시해 이 같은 무연분묘에 ‘개장 대상 안내 깃발’을 설치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 제28조, ‘무연분묘에 매장된 시신 또는 유골을 화장해 일정 기간 봉안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서다. 장기간 방치된 묘지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무연분묘 정비를 통해 묘역 환경을 정리한다는 취지다.
안내 깃발 설치 후 2년이 지나는 시점인 오는 11월, 서울시는 매장된 지 30년이 넘은 묘지 330기에 대해 우선적으로 개장을 진행할 예정이다. 2차례의 신고 안내와 개장 공고 이후에도 연고자가 없을 시 개장 후 화장을 거쳐 유골은 용미리 제2묘지의 무연고 합동안치실에 5년간 봉안된다. 봉안기간 종료 후에는 유택동산 등에 산골된다. 이 같은 방식으로 지난해 87기의 무연분묘 개장을 추진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지자체가 나서서 무연분묘를 찾아내는 상황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일부 사유지에서 발견되는 무연분묘는 제대로 된 개장이나 파묘가 쉽지 않다. 개장 전 3개월가량은 유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되고, 지자체로부터 개장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유족이 아닌 토지 소유주에게 고스란히 그 책임이 전가되는 것이다.
연고자가 없거나 방문하지 않아 장기간 관리되지 않은 묘지, 무연분묘는 서울시립 용미리 제1묘지에만 511기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무연분묘 주변으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는 모습. 사진=유병돈 기자 tamond@
일부 무연고 사망자들이 남에게, 혹은 남겨진 가족들에 피해를 주기 싫어 스스로 무연고자가 되길 선택했다. 하지만 생을 마감하고 고인이 된 이들에게는 그런 선택권도 없다. 그곳에 묻혔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가족들에게 버림받았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원하지 않았을 피해를 끼치는 셈이다.
이처럼 무연분묘 역시 무연고 사망자만큼이나 심각한 사회 문제이지만, 이를 제대로 들여다 볼 이들은 전무하다. 무연고사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전국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고 있고, 무연분묘에 대한 관리 대책 역시 전무한 실정이다. 전국에 약 2000만기가 넘는 묘지가 있으며, 이 가운데 관리 소홀로 인한 무연분묘가 약 15%라는 추정치 통계만 어렴풋이 존재할 뿐이다.
무연분묘들을 둘러본 뒤 서울로 돌아오려던 찰나, 용미리 제1묘지 입구의 풍경이 눈에 밟혔다. 식당, 구멍가게, 편의점을 불문하고 하나같이 조화를 팔고 있었다. 추석을 앞두고 성묘를 위해 이곳을 찾은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조화를 사들고 묘지로 향했다.
하지만 무연분묘 앞에 놓일 조화는 단 한 송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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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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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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