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해역사, 강릉 인물의 민중적 영웅담
맥국·태기왕 설화, 맥국 패망과 지명 연계
[아시아경제 라영철 기자] 강원도에서 전승하는 자연물과 관련한 설화 중에는 신화적인 사유를 담고 있는 것들도 있다.
강원도 사(史)에는 강릉의 '창해역사(滄海力士)' 설화는 일종의 민중적 영웅담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기록됐다.
영웅신화 대부분이 주인공의 승리로 끝나나, 창해역사는 승리자가 됐는지는 불확실하다. 이야기의 줄거리로 볼 때 오히려 승리자가 아닌 비극적 패배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한다.
춘천·횡성·평창 일대에서는 춘천지역에 있었던 고대국가 맥국과 관련한 '맥국(貊國) 설화'와 '태기왕(泰岐王) 설화'가 전승한다.
맥국 설화와 태기왕 설화는 맥국 패망을 주요 소재로 하며, 주로 지명과 연계해서 전해지고 있다. [편집자 주]
■ 민중적 영웅담 '창해역사' 설화
강릉에는 고대국가 신화 '창해역사(滄海力士)' 설화가 전해져오고 있다.
창해역사에 대한 기록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장량열전(張良列傳)', 홍직필(洪直弼)의 『창해역사 유허기』, 홍만종(洪萬宗)의 『순오지(旬五志)』 등에 수록돼 있다.
'창해역사'는 강릉이 낳은 인물로, 신비한 탄생 설화와 장사 설화의 한 형태로 전승된다.
'창해역사' 설화는 각 편에 따라 일부 다르나, 각 설화나 각 편의 공통 내용은 이렇다.
"노파가 빨래터에서 주어온 알(또는 박)에서 태어났으며, (또는 물에 떠내려오는 두레박에서 나왔다). 얼굴이 검어 성을 여(黎) 씨라고 했다. 자라면서 키가 9척이나 되는 힘센 장사였다."
"나라에 사람을 해치는 호랑이가 있어 이를 퇴치하고(또는 천근이나 되는 종을 옮기고) 임금의 상객이 됐다. 중국의 장량이 소문을 듣고 폭군 진시황을 죽이기 위해 그를 데려갔다. 진시황의 수레 행차를 철퇴로 쳤으나 다른 수레를 잘못 쳐서 쫓기는 몸이 됐다."
도사에는 주인공이 '창해역사'로 범칭 되는 이유를 강릉지역이 옛날 '창해군'으로 지칭되기도 했기 때문으로 밝히고 있다.
지금은 도로공사로 철거됐지만, 강릉 대창리(현 옥천동)에 창해역사 제사 지내는 곳(육성황당(肉城隍堂)이 있었다고 한다.
강릉시에서 전하는 설화에는 창해역사의 이름이 강중(剛中)이라 하기도 하고, 사후에 강릉의 성황신 가운데 고기를 대접받는 장군 신인 육성황신이 되었다고 한다.
창해역사 설화는 '신화적 전설'로 분류되지만, 신화로 볼 수 있는 근거로 창해역사가 주몽과 김알지 등의 신화에서처럼 알(박)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또한 영웅신화가 지니는 ‘비범한 탄생, 탁월한 능력 보유, 위험에 부딪힘, 위기의 극복과 승리’라고 하는 일반적 구조와도 유사하다.
이는 창해역사가 귀족이 아닌 평민의 신분이기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여'자는 '검다'라는 뜻과 '백성'이라는 뜻을 함께 지닌 말이다. 이름도 '여용사'·'여강중' 또는 '창해역사'라며 설화마다 다양하게 나타난다.
'아기 장수' 설화에서의 아기 장수처럼 민중들의 영웅으로 인식되고 결국 좌절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곧 창해역사는 백성의 영웅으로 공을 세운 영웅이면서도 폭군 진시황에게 대항하다가 쫓기는 몸이 된다는 줄거리는 그가 세계의 힘에 도전했다가 좌절하는 과정은 그의 비범성과 패배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창해역사는 경북 영일만 형성의 전설에도 등장한다.
옛날 왜국에 일본 전국을 다니며 일본의 모든 장수를 굴복시킨 힘센 역사(力 士) 한 사람이 조선으로 건너왔다.
그는 조선 방방곡곡의 강한 자들이 있는 곳은 모두 찾아다니면서 힘을 겨루어 역시 모두를 물리쳤다.
어느 날 영일 운제산 대각봉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며, 수평선 너머 고국 일본에 있는 부모 형제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때 등 뒤 인기척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키는 하늘을 찌를듯하고 몸은 태산과 같았으며, 혜성 같은 눈빛에 무쇠를 둘러놓은 듯한 팔다리의 한 역사가 버티고 있었다.
이 역사는 벽력같은 소리로 "네가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역사인가?", "그렇다, 너는 누구냐?", "요사이 이 나라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힘을 과시하는 왜인이 있다더니 바로 너구나. 나는 조선의 창해역사다. 너를 찾아 수십 일을 헤매다가 오늘 여기서 만나게 됐구나."
운제산이 뿌리째 흔들리고, 바람과 먼지는 천지를 뒤덮을 정도로 둘은 하늘을 날고 땅을 치며 서로 던지고 치고받고 싸웠다.
이윽고 '일본역사'가 쓰러지면서 손을 짚은 곳이 움푹 꺼지면서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호수가 됐는데 이 호수가 지금의 영일만이 됐다고 한다.
운제산 정상부에는 '창해역사'의 전설이 담긴 대왕암(大王巖)이 있다.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사람이 이 바위에 기도하면 영험이 있다 해 사람들이 오곤 한다.
■ 고대국가 '맥국' 설화와 '태기왕' 설화
춘천·횡성·평창 일대에는 춘천지역에 있었던 고대국가 맥국(貊國)과 관련한 맥국 설화와 태기왕(泰岐王)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춘천 맥국 설화와 횡성 태기왕 설화 맥국의 패망을 주요 소재로 하며, 주로 지명과 연계됐다.
맥국이 적의 침공을 받고 삼악산으로 궁궐을 옮기니 산세가 험해 적들은 공격 의사가 없는 것처럼 위장했다.
이에 안심한 맥국을 적들이 기습공격으로 북문을 부수고 들어갔고, 맥국 군사는 저항도 못 하고 크게 패했다.
산 중심부 삼악산성은 적국(신라와 예)의 공격을 받은 맥국이 최후로 저항했던 곳이다.
등선폭포 일대는 군사들이 쌀을 씻었던 곳이라 하여 '시궁치'라 불렸고, 그 아랫마을은 군사들이 옷을 말리던 곳이라고 '의암(衣巖)'이라 불렀다고 한다.
춘천시에서 전승하는 맥국 설화에서는 맥국 군사가 패한 뒤 맥국의 왕과 장수와 백성들이 어떻게 되었다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태기왕 설화에서 횡성군과 평창군에 걸쳐 있는 태기산에서 '맥국의 마지막 왕'이라고 하는 '태기왕'이 피난하고 재기를 노렸다고 전한다.
맥국 설화가 횡성군과 평창군의 태기왕 설화로 이어지는 대목이다.
횡성군 갑천면과 평창군 봉평읍 경계에 있는 태기산에 맥국의 태기왕(일부 각 편에서는 삼한시대 진한의 마지막 왕이라고도 함)이 피난을 왔다.
태기왕의 군사들은 '갑천'에서 갑옷을 벗어 빨아 입고서 더 북진해 덕고산에 이르렀다. 태기왕은 이곳에 성을 쌓아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짓게 하고 훈련을 시켜 후일을 도모했다.
태기왕은 박혁거세의 군사가 남쪽에서 쳐들어올 것이라고 여겨 남쪽만을 경계했는데, 신라군은 염탐꾼을 풀어 북쪽이 취약한 것을 알고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 방면으로 일제히 공격을 감행했다.
태기왕이 신라 군사와 일대 접전을 벌였으나 결국 참패하고 남은 군사들을 이끌고 서문을 나가 '지르메재'를 넘어 인근 속실리 율무산성으로 도주했다.
그 이후 태기왕의 생사는 전해지지 않지만, 설화에서는 평창군 봉평면 멸운리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고 전한다.
당시 패망한 군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새로운 마을을 개척해 살았던 곳이 '신대리'라고 한다.
이처럼 지명과 연계해 전해지는 맥국 설화와 태기왕 설화는 맥국의 패망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맥국 관련 부분은 역사적으로 고증 단계에 있으므로 구체적인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전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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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신화적 사유, 또는 역사적 상상력에 의한 세계가 전설의 세계로 이행한 것이라고 본다.
라영철 기자 ktvko258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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