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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서울힐튼호텔이 사라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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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언론인·문화비평

[톺아보기]서울힐튼호텔이 사라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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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누구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올라버린 세금에, 누구는 무주택자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박탈감에 시달린다. 주택 가격 잡겠다고 내놓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번번이 실패하며 집값을 끌어올린 탓이 크지만 그에 앞서 ‘부동산을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선 건축가의 목소리는 오간 데 없고, 건축은 설 곳을 잃고 만다. 오랜 역사를 한순간에 밀어버리며 공간 대비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개발업자들만 박수를 받을 뿐이다. 밀레니엄힐튼서울 호텔과 관련한 최근 뉴스를 접하면서 좋은 건축물이라고 예외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다.


힐튼서울은 1983년 12월 서울 남산 기슭에 23개 층 700여개 객실 규모로 문을 연 5성급 호텔이다. 건축가 김종성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의뢰를 받고 1978년 설계를 시작해 6년 만에 완공한 건물이다. 1935년생인 김종성은 서울대 건축과 재학 중 도미, 미국 일리노이공대(IIT)에서 모더니즘 건축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지도를 받으며 건축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1962년부터 11년간 미스의 건축연구소에서 근무했다. 1972년 독립해 김종성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면서 IIT 부학장까지 지냈으니 건축실무로 보나 학문적으로 보나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정통파 후계자다. 그가 한국행을 결심하게 만든 것이 바로 힐튼호텔 프로젝트였다.


서울역 앞 대우빌딩과 이어지는 남산 기슭의 대지는 거대한 호텔을 짓기에 만만한 지형이 아니었다. 동측의 남산 길과 서측 지면을 잇는 경사로의 높이가 자그마치 18m였다. 그는 남산 쪽에 메인 로비를 두고 지하 1층까지 계단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아트리움을 만드는 것으로 경사 문제를 해결했다. 타원형 천창으로 자연광을 들이고 브론즈 기둥으로 3개층을 연결하며 갈라지는 계단의 가운데에는 계단식 실내 분수를 설치한 디자인이 완성됐다.


마감이나 공법이 디자인을 구현하기 불가능한 수준이었지만 그는 직접 뛰어다니며 부식 동판 장인을 찾아내고 수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최고급 대리석 생산지인 이탈리아 카라라에서 대리석을 들여와 내장을 하고 직접 디자인한 계단식 실내 분수를 만들었다. 겉보기에 최고급이었고 디자인과 마감을 구현하는 데 들어간 기술도 당시 최첨단인 커튼월 방식의 건축물이 완성됐다. 남산을 껴안고 있는 듯 양측 모서리가 꺾인 호텔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이 그랬듯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엄격하게 반듯하고 세련된 존재감을 지닌 채 남산을 지켰고 미래를 향해 다부지게 발전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그런데 이 멀쩡한 호텔이, 그것도 세계적인 건축가의 역작이 한순간에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1999년 외환위기 당시 대우그룹 산하 대우개발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아 23년째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힐튼서울 최대주주 CDL호텔코리아는 이지스자산운용에 이 호텔을 매각하기로 하고 막바지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호텔을 인수한 뒤 헐고 이 자리에 오피스빌딩을 세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타까운 마음에 미국 뉴욕에 체류하고 있는 김종성 건축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외국에서는 오래 된 건축물에서 가치를 찾고 있건만 지은 지 38년밖에 안 된 건물을 헐겠다는 발상에 할 말이 참 많겠지만 그는 감정을 다스리며 차분하게 말했다. "누적적자 때문에 손절매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다만 힐튼호텔은 경사진 부지를 메인 로비와 지하 1층까지 연결하고 자연광을 들여놓는 방식으로 건축적 완성도를 추구한 작품이어서 의미가 커요. 최대의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건축의 잠재적 가치를 살려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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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남겨놓고 용적률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최적의 대안을 찾았으면 한다는 그의 바람이 받아 들여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는 나라가 선택해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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