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도시락은 남아 있지도 않고, 막상 제로페이를 내미니 오렌지주스도 안 된다, 마시는 요구르트도 안 된다 하는 통에 민망하고…."(학부모)
"첫날이라 아직 전산에 (바우처 상품으로) 등록이 안 된 것들도 있고, 저 같은 아르바이트생은 잘 알지도 못하는데 학생이나 어머님들이 이것저것 물어보셔서 평소보다 몇 배는 정신이 없었네요."(편의점 직원)
희망급식 첫날, 학생·학부모 불만
20일 서울 지역 편의점에서 ‘희망급식 바우처’ 사용이 시작된 첫날 곳곳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구매 가능한 품목이 도시락, 과일, 우유, 과일주스 등으로 제한된 탓에 막상 선택할 수 있는 상품 자체가 적고 그마저도 제대로 안내가 되지 않아 혼란스럽다는 게 주된 평가다. 일부 주택가 편의점에선 도시락 수량이 넉넉지 않아 일찌감치 품절되기도 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원격수업을 받고 있는 서울 지역 초중고 학생 56만명에게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구매할 수 있도록 10만원씩 지원하는 이번 바우처 사업엔 교육청 예산과 지자체 무상급식 예산 560억원이 투입됐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엔 각 가정에 쌀과 농·수·축산물, 가공식품 등으로 구성된 식재료 꾸러미를 지원했으나 학부모들이 조리하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는 도시락 등을 더 많이 원해 올해는 사용처를 편의점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편의점은 학생들이 쉽게 오갈 수 있는 데다 시중 도시락 업체나 식당에 비해 한 끼에 4000원으로 책정된 급식단가를 맞추기 용이하다. 구매 가능한 품목은 영양학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대학교수 등이 참여한 한교급식자문위원회 심의를 통해 최종 결정했다.
현장서는 "도시락 꼭 먹여야 하나"
마포 지역 편의점에서 만난 학부모 A씨는 "부모 입장에선 아무리 구성이 좋다고 해도 매일 차가운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라 하고 싶진 않다"며 "빵이나 핫바, 컵밥 등도 괜찮을 텐데 왜 사전에 이런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은 건지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 B군은 "컵라면이나 음료수는 건강에 좋지 않아 안 되겠지만 야채 샌드위치랑 샐러드는 먹어도 배고플 것 같다"며 "삼각김밥에 바나나우유 하나면 최애템인데 그냥 엄마카드로 사먹어야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날 각 편의점에선 도시락과 김밥, 샌드위치, 훈제계란, 과일, 과채주스, 흰우유, 두유 등 관련 상품 발주가 평소보다 15~24%가량 늘었다. 편의점 관계자는 "시행 첫날을 맞아 각 점포별로 도시락과 과일 등 바우처 해당 상품들을 더 들여놨지만 그만큼 고객들도 많이 찾으셔서 일찌감치 품절된 곳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편의점서는 고가 과일꾸러미 판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바우처로 결제할 수 있는 한도에 맞춘 과일꾸러미가 인기다. CU는 일부 점포에서 수박이나 메론, 파인애플, 키위, 망고, 방울토마토 등의 과일을 소량씩 묶은 과일꾸러미를 내놨다. 수박 한 통은 1만5900원, 과일꾸러미는 3만9000~7만7000원 선인데 편의점에서 바우처로 결제하면 가정에 택배로 배달된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편의점에서 만난 학부모 C씨는 "아이가 둘이라 20만원어치의 바우처를 받았지만 우유 말고는 딱히 사고 싶은 게 없었는데 과일이나 실컷 먹어야겠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학부모 D씨는 "학생들 점심을 해결하자고 바우처를 지원해 놓고 이것도 저것도 안 되고 결국 값비싼 과일을 떠안기는 거냐"며 "교육청의 탁상공론식 행정과 편의점 꼼수에 세금만 낭비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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