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미얀마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가 또다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3면이 적국으로 둘러싸인 채 남쪽으로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미얀마는 역사의 전환점이 올 때마다 줄타기 외교를 강요받아왔다. 시작은 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얀마가 오늘날처럼 동남아시아의 주요국 중 하나로 성립된 것은 12세기, 현재 미얀마의 주 종족인 버마족이 이주해온 이후였다. 버마족이 세운 첫 왕국인 파간왕국은 국가 기틀을 갖춘 13세기부터 아슬아슬한 외교를 펼쳐왔다. 당시 전 세계를 호령하던 정복국가인 몽골제국과 이에 대항해 싸우고 있던 경제대국인 중국 남송 사이에서 파간왕국은 국가의 명운을 건 외교를 해야 했다.
당시 파간왕국은 몽골의 막강한 군사력보다는 남송의 막대한 경제력에 기대기로 결정했지만, 1279년 남송이 몽골제국에 의해 멸망하면서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된다. 몽골군은 1277년부터 파간왕국을 침공해 10년간 미얀마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결국 1287년 국왕이 항복하면서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다. 이후 미얀마는 통일되지 못하고 수세기에 걸친 혼란기가 이어졌다.
미얀마의 대분열은 마지막 전통왕조인 꼰바웅 왕조가 들어선 1752년에야 마무리됐다. 그러나 꼰바웅 왕조 역시 19세기부터 나타난 서구열강들 사이에서 끼이게 된다. 서쪽에는 인도를 점령한 영국이, 동쪽에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차지한 프랑스가 나타나자 꼰바웅 왕조는 고심 끝에 프랑스와 손을 잡고 영국과 대적하는 전략을 취한다.
하지만 1824년부터 시작된 영국과의 전쟁은 60년 이상 이어졌고, 프랑스가 끝내 개입을 포기하면서 미얀마는 홀로 영국과 대결하게 된다. 결국 1885년, 꼰바웅 왕조는 궁궐까지 함락당해 국왕이 포로로 잡히면서 멸망했고, 미얀마는 1948년까지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게 된다. 영국 총독부는 오늘날 방글라데시 일대에 살던 인도인들을 미얀마에 강제 이주시킨 후 이들을 앞세워 미얀마를 간접통치하기 시작한다. 오늘날 미얀마가 전 세계로부터 비난받는 인권문제인 로힝야족이 바로 이 강제 이식됐던 인도인들의 후손이다. 꼰바웅 왕조의 외교적 선택이 미얀마의 험난한 근현대사로 귀결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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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숱한 역사의 역경을 헤치고 나온 현대 미얀마는 또다시 위태로운 외줄 위에 서게 됐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패권 경쟁에서 미얀마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선조들의 실수를 반복해 또다시 망국의 역사가 되풀이될지 전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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