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과징금 20억' 원안 확정
농협銀 "법률논란 많아 안타까워"
다른 은행들도 영향받을까 촉각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NH농협은행이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의 펀드 판매로 금융당국으로부터 과징금 20억원을 부과받았다. OEMㆍ시리즈펀드와 관련, 판매사인 은행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제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펀드 판매 창구의 역할을 맡고 있는 다른 은행들도 광범위한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25일 금융당국 및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전일 정례회의를 열고 지난 3일 증권선물위원회가 농협은행에 부과한 과징금 20억원을 원안 그대로 최종 확정했다. 당초 금융감독원이 올린 제재안은 과징금 100억원이었으나 증선위는 과징금이 너무 과하다는 판단 아래 20억원으로 수위를 낮춘 바 있다.
농협은행은 2016~2018년 파인아시아자산운용, 아람자산운용에 OEM 방식으로 펀드를 주문, 투자자 49명 이하인 사모펀드로 쪼개 팔아 공모펀드 규제를 회피한 혐의를 받았다. OEM 펀드는 자산운용사가 은행ㆍ증권사 등 펀드 판매사에서 명령ㆍ지시ㆍ요청 등을 받아 만든 펀드로, 자본시장법상 금지돼 있다. 농협은행은 금융상품을 판매한 것은 2016년 3월부터 2018년 3월까지이고 판매사에 증권신고서 제출의무가 부과된 것은 법이 시행된 2018년 5월부터라며 소급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또 쟁점대상인 펀드 투자자의 손실이 전혀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농협은행 측은 "금융위 결정을 존중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도 "다만 펀드판매사가 집합투자증권을 판매하면서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는 건 처음이고, 법률 적용상의 논란도 많았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결정에 대해 지나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금융당국이 펀드판매사인 은행을 '주선인'으로 보고 제재안을 확정했지만 당국이 참고한 바이오인프라 사건은 이번 제재안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증권 발행인에 대한 실사를 하지 않고 집합투자증권(펀드 등)의 판매 업무만을 담당하는 판매사는 자본시장법상 주선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4월 서울행정법원은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 유상증자 주선인이 증선위에 제기한 과징금부과처분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이는 지난해 11월 증선위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네차례 유상증자 당시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과 주선인이 증권신고서 미제출 했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조치하자 주선인 A씨가 걸었던 행정 소송이다. A씨는 당시 과징금 1억5100만원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학계와 법계에서는 여전히 법적 쟁점이 많다는 입장이다. 유사점은 있으나 주체가 개인과 법인으로 차이가 있고, 형태도 지분증권과 수익증권 등으로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은 "농협은행 사건은 유사소송 판례와 사실관계부터 다르고, 법적 쟁점이 많다"면서 "또 관련 소송은 법 해석상 논란이 많아 항소심에 계류되고 있는 만큼, 금융시장에 단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어떠한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다면 제조사와 유통사 간에 업무 협의가 먼저 진행되는 것이 기본"이라며 "하지만 이번 제재로 펀드상품 판매사와 운용사 간 소통 자체가 막히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농협은행이 첫 사례라는 부담감 때문에 행정소송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에 대해 은행들이 반기를 드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가운데 농협은행마저 이 대열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법적 논란이 있는 경우에는 과징금보다 소송비가 더 들더라도 향후 최고경영자에 대한 배임 가능성을 막기 위해 행정소송 등 할 수 있는 수단을 다 동원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라면서도 "하지만 향후 보복 검사 등을 당할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결국 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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