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임정수 기자] 국내 대기업들이 오너(대주주) 중심의 경영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 오너 일가의 불법·편법을 활용한 증여와 승계 과정, 오너의 독선과 전횡으로 인한 기업부실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대를 이은 세습 경영자에 대한 인식들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하면서 오너 경영의 대안으로 보다 건전하고 전문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전문경영인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졌다.
하지만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해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기아차, 대한전선, 범양상선, 대우조선해양 등은 전문경영인의 경영 실패로 뼈아픈 경험을 해야 했다. 회계 분식, 횡령 등의 불법 ·탈법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반면, 오너 경영체제를 이어온 삼성, 현대차, LG, SK, CJ, 한화그룹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상당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주인 의식을 가진 창업주와 후대 경영자들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결과다. 그렇다고 3세, 4세까지 오너 경영이 이어지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 장담하기도 어렵고 안정적인 승계가 대를 이어 계속 가능할지도 확실치 않다.
삼성그룹은 스웨덴의 발렌베리식 지배구조 개편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렌베리 가문은 공익재단을 통해 투자지주회사를 지배하고, 투자회사는 은행 등의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동시에 지배하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가문은 공익재단 지분과 해당 지분에 대한 차등의결권을 갖고 그룹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신에 계열사로부터 벌어들이는 재단 이익의 70~80% 가량을 교육 등의 공익사업에 사용한다. 이익의 사회 환원을 대가로 오너의 소유와 경영 참여를 널리 인정해 주는 구조다. 이를 삼성에 적용하려면 스웨덴처럼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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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4세 승계를 포기하면서 다른 대기업 오너들이 받는 압박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에게 '정의'와 '공정'이라는 잣대만으로 전문경영인 체제 또는 그와 유사한 다른 어떤 지배구조로의 전환을 사회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기업의 효율적인 성장과 기업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까. 오너 경영의 폐혜보다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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