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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열의 體讀] 재난은 건물뿐 아니라 인간성까지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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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이탈리아 화산분화부터
2011년 일본 도호쿠 지진까지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꾼 대재난
피할 수 없지만 대비책 찾기는 가능

[최대열의 體讀] 재난은 건물뿐 아니라 인간성까지 삼켜버렸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후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 시내. 당시 많은 비로 제방이 무너져 뉴올리언스 지역의 80%가 물에 잠겼다. 루이지애나주가 1년 후 발표한 사망자는 1464명인데 일부 빠진 사람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눌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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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재난 같은 극한 상황에 처하면 진면목이 나타난다는 건 대체로 맞는 얘기인 듯하다. 본디 모습보다 숨기고 싶은 면을 드러낸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개개인은 물론 나아가 집단이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과거 세월호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같은 참사에 대처한 특정 집단의 태도는 그 자체로 집단의 밑천을 까발렸다. 지난달 이천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대로 10여년 전 사고를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가 발전 중이라는 믿음이 허상에 불과함을 보여줬다.


재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살펴보는 건 가치 있는 일이다. 미국의 지질학자 루시 존스가 쓴 '재난의 세계사'가 지향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저자는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지진학연구소의 연구교수로 지질조사국(USGS)의 위험감소 과학자문위원을 지냈다.


저자는 지진 정보로 캘리포니아주 남부의 위험도를 낮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진을 막을 순 없다. 하지만 지진 피해는 막을 수 있다. 그가 로스앤젤레스시장과 만나 지진 대처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사회 각계에 지진의 위험성과 관련된 과학 데이터를 끊임없이 들이미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최대열의 體讀] 재난은 건물뿐 아니라 인간성까지 삼켜버렸다 '재난의 세계사' 표지


간토 대지진 억울한 조선인 희생
美 미시시피강 홍수 속 이기주의
재난에 대응하는 인간의 본능 조망

지진ㆍ홍수 같은 자연 현상은 지구가 물리적으로 변하면서 일으키는 필연적 결과다. 이런 자연 현상을 피할 순 없지만 재난은 피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자연재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자연재해 대비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재난의 세계사'는 과거 인류가 겪은 대재난을 시대순으로 배치했다. 각 자연재해가 일어난 시대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등 재난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설명하려는 저자의 태도는 매우 친절하다. 재난을 마주한 당대의 시선과 맞출 수 있어서다.


책은 2000여년 전 이탈리아 남부의 화산 분화에서부터 인류 역사상 인명 피해가 가장 큰 재해로 꼽히는 1783년 아이슬란드 라키산 분화, 자연재해에 인재도 뒤섞여 피해가 커진 2011년 일본 도호쿠 지진, 앞으로 미국 서부에서 일어날 게 '확실시'되는 미래의 지진까지 다루고 있다. 과거 재난의 전후를 살피는 것은 물론 인간이 각종 재난에 대응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신념을 드러내는지, 아울러 자기에게는 닥치지 않으리라 착각해 안심하는 경향 등 재난을 대하는 인간의 습성까지 두루 조망한다.


1923년 일본 간토 대지진으로 도쿄에서만 건물 40만채가 무너지고 14만명이 죽었다. 그보다 심각한 트라우마가 남은 건 자연재해 이후 벌어진 소수집단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 때문이다. 당시 재일 조선인 학살 사건은 몇몇 우연이 중첩되면서 일어났다. 당시 일본은 고립된 전통사회에서 국제적인 국가로 바뀌어가는 과도기여서 사회 전반이 양분돼 있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일왕과 총리 모두 부재 상태였다. 일왕은 지진 발생 수년 전부터 건강이 안 좋아 대중 앞에 나서지 못했다. 총리는 지진 발생 1주 전 자연사했다. 책임질 만한 지도자가 없던 셈이다.


사회가 혼돈에 빠지고 정부를 향한 대중의 분노는 거세졌다. 소수집단인 식민지 조선인은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흥분한 시민들이 스스로 지키겠다며 조선인을 찾아 죽이고 경찰은 묵인했다. 저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닥치면 인간은 무언가에 책임을 돌리고 탓하고 싶어 한다"면서 "이 경우 책임을 소수집단에 돌린 것은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기도 하면서 또 세상의 낯선 변화에 대한 일본의 양가적 감정을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최대열의 體讀] 재난은 건물뿐 아니라 인간성까지 삼켜버렸다 2011년 규모 9.0의 지진과 이후 쓰나미로 파괴된 일본 도호쿠의 한 마을. 당시 지진과 쓰나미로 1만8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눌와 제공>



간토 대지진 후 4년이 지난 1927년, 바다 건너 미국의 미시시피강 홍수 때도 인간 본성의 추악한 면은 드러났다. 그 전 해 여름부터 내린 비로 강물이 차오르면서 제방의 기능은 한계에 이르렀다. 그러자 주민들 사이에서 강의 반대편 제방을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일었다. 자기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강물이 넘칠 정도로 불었으니 반대쪽 제방을 폭파하면 자기 마을 쪽 제방은 한숨 돌릴 것이라는 논리였다. 건너편 주민이 익사하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행히 순찰대가 제방 폭파 시도를 차단할 수 있었다. 이후 강 상류 쪽 제방이 실제로 무너지자 하구의 뉴올리언스 주민들은 강 반대편 제방을 폭파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흑인을 노예처럼 부려 약해진 제방 보강 작업에 나섰다. 같은 해 4월 마운즈랜딩이라는 마을의 제방에서 일하던 흑인들은 제방이 무너질 조짐이 보이자 피신하려 했다. 그러나 순찰대가 도망가지 못하게 총으로 위협하면서 이들 흑인은 현장에서 물살에 휩쓸려 죽고 말았다.


올해 초 중국에서 시작해 세계 전역으로 확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도 위에 열거한 재난들처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계적 교류가 잦아진 연결 사회는 그 자체로 감염병 전파에 최적화된 상태다. 감염병이 유행하자 나라마다 국경을 걸어잠갔다. 환자나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의 지도자는 솔선해서 음모론에 군불을 땐다. 이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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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방역 조치가 호평받고 있다고는 하나 병에 걸렸는데도 병원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하고 집에서 숨이 끊긴 이도 있다. 누군가는 별장에서 재택근무하는 반면 어떤 이는 마스크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한 채 일해야 하던 상황은 재난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이다. 이번 재난을 극복한 뒤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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