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황준호 기자] 국내 연구진이 우리 몸의 물과 단백질과의 관계를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물은 생명체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물질로 체내 물의 특성을 파악하게 되면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거나 신약을 개발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울산과학기술원은 28일 권오훈 자연과학부 교수의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레이저 이용해 체내 물의 수소결합 측정
연구팀은 레이저 빛을 받으면 물에서 수소 이온(양성자)을 뺏는 분자를 활용해 체내 물이 가진 수소 결합 에너지를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수소 결합은 수소와 결합한 분자 주변에 나타나는 전기적 끌어당김이 만든 화학결합이다. 물 분자끼리의 연결이나 생체고분자의 구조를 결정하는 데에 이 결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빛을 받아 들뜬 상태가 되면 '주변 물 분자의 수소 이온(H+)를 탐내는 분자(7-아자트립토판)'를 활용해 수소 결합 에너지를 측정했다. 이 분자가 물 분자의 수소 이온을 빼앗을 때 주변 물의 수소 결합이 끊어졌다가 재배치되는데, 그 반응 속도를 보고 물 분자의 수소 결합 에너지를 추론한 것이다.
7-아자트립토판이라는 물질은 들뜬 상태에서 이웃한 물 분자에서 수소 이온을 뺏고, 자신의 수소 이온을 다시 물 분자에게 준다. 이 과정에서 물 분자간 수소 결합은 끊어졌다가 재배치된다. 물 분자간 수소 결합 세기가 클수록 결합을 끊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 반응 속도가 느리다.
연구팀은 7-아자트립토판을 이용한 인공단백질을 합성해 이 내용을 검증했다. 7-아자트립토판이 들뜬 상태에서 방출하는 빛을 피코초(Picosecond, 10억 분의 1초) 단위로 측정하는 분광법을 이용해 반응 속도를 구했다. 그 결과 단백질 주변에서 물의 수소결합 에너지는 단백질이 없는 상태보다 낮게 나타났다. 단백질 주변의 물은 수소결합 에너지가 작아서 더 쉽게 끊어지는 것이다. 이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계산한 결과와도 일치했다.
몸 속 물의 특성 추적해 질병의 원인 파악도 가능
제1저자인 박원우 UNIST 화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은 "7-아자트립토판을 들뜨게 만드는 레이저와 수소 이온 교체 전 반응물과 교체 후 생기는 생성물이 내뿜는 빛을 감지하는 탐침 시스템이 하나로 결합된 '여기-탐침 방식'을 이용해 반응이 일어나는 찰나를 포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권오훈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생체 속 특정 영역에서 물의 수소결합 에너지를 도출하는 실험적 방법론을 제시했다"며 "생체고분자인 단백질의 구조나 접힘을 파악하고, 단백질-리간드(ligand) 결합과 같은 수많은 생물학적 현상에서 생체 속 물의 역할을 추적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어 신약 개발 등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곽상규 교수팀과 아주대(총장 박형주) 응용생명화학공학과의 유태현 교수팀이 함께 진행했다. 연구 결과는 화학 분야 최상위 저널인 '앙게반테 케미'에 주목 받는 논문으로 선정됐으며 27일자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