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공무원 성추행'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과거 회식 사진 논란
여가부 조사, 회식 장소서 성희롱 가장 많이 발생
전문가, 성폭력 막을 수 있는 실효성 대책 마련 절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연주 인턴기자] #취업준비생 김모(26)씨는 지난 2017년 모 기업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처음 겪어본 회식 문화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직급이 가장 높은 상사가 뒤늦게 자리에 합류하자 다른 상사들이 자연스럽게 여성 인턴들을 불러 양옆에 골라 앉혔기 때문이다. 술잔이 비어있지 않도록 잘 보고 맞춰서 술을 따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지만 김씨와 다른 여성 인턴을 제외하곤 신경조차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김씨는 "드라마나 뉴스에서만 보던 상황이라서 당황스러웠는데 다들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며 "혹여나 위험한 일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이 돼서 매번 회식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앉아있었다"고 밝혔다.
#직장인 이모(28)씨는 여성 직원들만 골라 술잔 돌리기를 하는 상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신이 술을 마시던 잔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넘겨 차례로 술을 마시도록 하는 게 문화라고 했다. 굳이 여성 직원들만 골라 잔을 돌리는 게 의심이 됐지만, 문제 삼아 득이 될 게 없으리라 생각했을 뿐더러 오히려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까 봐 겁이 났다. 이씨는 "회식 때 여직원들을 옆에 앉히는 건 기본"이라며 "술 따르기, 술잔 돌리기, 건배사 등 2020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회식문화에 회식 기피증이 걸릴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상사가 술에 취하기라도 하면 장난삼아 팔이나 다리를 한 번씩 치는데 자리가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과거 자신 주변으로 여직원 앉히고 술자리 논란
지난 23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여성 공무원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를 결정한 후 과거 오 전 시장이 트위터에 올린 회식 자리 사진이 논란에 휩싸였다. 공개된 사진은 2018년 11월 사업소 용역 근로자와 회식 자리에서 찍은 것으로 사진에 찍힌 대부분이 남성이었지만, 오 전 시장의 옆과 맞은편에는 여성이 앉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해당 사진이 논란이 되자 오 전 시장은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며 사과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오 전 시장이 사퇴하던 이날 서울시청 소속 직원은 동료를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에 따르면 4·15 총선 전날인 지난 14일 저녁 박원순 서울시장 비서실 회식 후 남자 직원이 만취한 동료 여직원을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로 서초경찰서에 입건됐다. 남성 직원은 시장 비서실에 근무하고 있었다.
◆ 회식 자리 '성 차별' 만연…성희롱 빈번하게 발생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했지만 회식 자리에서의 성차별 상황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직원을 옆자리에 앉혀 술을 따르게 하는가 하면,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등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발표하는 '성희롱 실태조사'(공공기관 400개의 직원 2,040명·민간사업체 1,200개의 직원 7,264명) 2018년분에 따르면 대한민국 직장인 100명 중 8명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과 비정규직일수록 성희롱을 겪은 비율이 높았다.
성희롱이 발생한 곳은 회식 장소(43.7%)가 가장 많았고 다음은 사무실(36.8%)이었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6개월여간 직장인들과 성희롱 방지업무 담당자 등 총 1600명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성희롱 피해자의 81.6%가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다.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다는 비율은 2015년 통계(6.4%)보다 상승했다.
사무직에 종사하는 김모(29)씨는 "회식 2차로 노래방에 갔는데 한 상사가 흥이 올랐다는 이유로 어깨를 감싸고 손을 잡았다"며 "같이 춤을 추자는 말까지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다른 직장인 최모(27)씨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활발했을 때, 여성 직원들하고는 무서워서 말도 못 섞겠다고 한 상사가 그날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몸을 밀착했다"며 "몸을 가눌 수 없었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꼭 이런 일은 여성 직원들을 상대로 벌어진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한모(26)씨는 "팀원들이 다 같이 있는 술자리에서 과거 유흥주점에서 회식했던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이어나가 표정 관리 하기가 어려웠다"며 "상사들은 '요즘 회식 너무 건전하고 재미없다'는 말까지 했다. 그 상황에서 그만하라는 말이 안 나와서 멋쩍게 웃고 넘겼다"고 했다.
한씨는 "그 얘기를 한 상사들이 나보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분이기에 거기서 화를 내거나 반발하면 되레 저에게 부당한 처우가 올 것 같았다"며 "같은 자리에 있던 여성 직원들도 다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오 전 시장 사퇴 관련해 전문가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지율 부산성폭력상담소 상담실장은 27일 'YTN라디오'에서 "권력형 성폭력이든, 이러한 것들이 일어났을 때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독립성이 보장된 기구가 사실은 필요합니다"라면서 "그 기구가 이러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어느 정도 조사도 해야 하고, 2차 피해가 없도록 어떤 방지대책도 해야 하고 할 때 힘 있는 기구가 설치되어야지만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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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우리 사회가 이런 일을 계속 반복해오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스스로를 뼈저리게 성찰해봐야 하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라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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