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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한그루 의연함 심은 명재상이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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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맹사성과 맹씨행단 은행나무
소 타고 피리 불던 청백리 맹사성 유산…최영 장군에 물려받은 단촐한 고택에 남아
세월 풍파 이기며 열매 맺는 '쌍행수'…정치 무뢰한 설치는 오늘날 큰 가르침 선봬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한그루 의연함 심은 명재상이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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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에 오르면 먼저 말과 가마를 챙기던 때가 있었다. 권세가임을 과시하기 위한 행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대 최고 벼슬을 누린 조선의 명재상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1360~1438)은 말도 가마도 챙기지 않았다. 길을 나설 때 민가에서 흔히 챙길 수 있는 소에 올라탔다. 허름한 행장에 어김없이 챙기는 건 피리였다. 소 타고 한가로이 피리 불며 지나가는 맹사성을 당대 최고의 벼슬아치로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보다 뒤에 역시 최고 벼슬을 지낸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필원잡기(筆苑雜記)'에서 맹사성을 가리켜 "청백하고 소탈하며 단정하지만 중후하다"고 경하했다. 서거정은 맹사성의 청백리다운 성품과 생활방식을 이렇게 기록에 남겼다. "천성으로 음률을 깨쳐서 항상 피리를 잡고 날마다 서너 곡조를 불고 문을 닫고 손님을 맞이하지 않았다. 공사(公事)를 아뢰러 오는 이가 있으면 사람을 시켜 문을 열고 맞이하였다. 여름에는 소나무 그늘에 앉아 있고 겨울에는 방 안 부들자리에 앉았으며 좌우에는 다른 물건이 없었다."


맹사성이 소를 타고 다녔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정약용(丁若鏞·1762~1836)도 한 시에서 맹사성을 아예 "소 타고 다닌 맹 정승"으로 표현했다. 청빈한 살림에 소를 타고 다니는 재상이라니….


맹사성은 또 손님이 찾아오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몸소 문 앞에 나가 맞이했다. 배웅할 때도 대문까지 나갔다. 당대는 물론이요 그로부터 600년이나 더 지난 지금도 찾아보기 어려운 정치인의 귀감이랄 수 있다.


오래 된 그의 집을 찾아가 보면 그가 얼마나 청빈하게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충남 아산 배방읍 중리에 남아 있는 아산 맹씨행단이 그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살림집인 맹사성의 고택은 그야말로 꼭 필요한 것 이상을 방안에 들일 수 없을 만큼 단출한 집이다. 물론 조선 초기의 사정을 감안하면 그나마 집이라도 한 채 갖추었으니 부유한 집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집의 주인이 최고 벼슬을 지낸 재상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 작은 집도 사실은 맹사성 스스로가 아니라 고려 말 최영(崔瑩·1316~1388) 장군이 지은 것이다. 최영이 어느 날 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는데 난데없이 용 한 마리가 나타나 집 앞 돌배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랐다. 꿈이었다. 깨어나 바깥을 보니 한 어린 아이가 돌배나무에 올라가 주인 허락도 없이 배를 따고 있었다. 장군이 꾸짖자 아이는 당황하지 않고 예까지 갖춰 용서를 청했다. 줄행랑을 놓기만 하는 여느 아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어리지만 늠연한 태도를 갖춘 어린 맹사성이었다.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한그루 의연함 심은 명재상이 그리워… 하늘 향해 곧추 솟아오른 맹사성 은행나무의 줄기.

그 일로 최영은 어린 맹사성을 매우 아꼈다고 한다. 나중에는 마침내 그를 손녀 사위로 받아들이고 꿈 속에서 용이 타고 오른 돌배나무가 있는 자기 집을 물려주었다. 그 집이 바로 지금의 맹사성 고택이다.


H자형으로 지어진 정면 4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의 앙증맞은 이 집은 두 칸의 대청과 양쪽 한 칸씩의 온돌방으로 이뤄졌다. 꼭 필요한 것 이상은 안에 들여놓을 수 없을 만큼 소박한 집이다.


이 작은 집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여기서 삶을 꾸려나간 큰 인물의 흔적이 남은 곳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라기보다 마당 가장자리에 솟아오른 한 쌍의 커다란 은행나무 때문임이 틀림없다. 큼직한 몸피 때문이기도 하지만 맹사성이 이 집에 살 때 몸소 심고 가꾼 나무라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그때가 600년 전이니 은행나무는 무려 600살이나 된 큰 나무다.


맹사성은 이 집에서 살림을 꾸리면서 마당에 나무도 심었다. 여러 나무 가운데 그는 은행나무를 골랐다. 공자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은행나무 그늘에서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에 따라 조선의 유학자들이 많이 심었던 나무가 은행나무다. 오래 된 향교나 서원에서 커다란 은행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따르던 조선의 재상 맹사성이 자기 뜰에 은행나무를 심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맹사성은 나무를 잘 키우기 위해 나무 둘레에 단까지 쌓아올렸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맹씨 행단(杏壇)'이라고 부른다. 행단은 공자가 학문을 설파하던 자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한그루 의연함 심은 명재상이 그리워… 고려 때 최영 장군이 짓고 맹사성이 살았던 충남 아산의 맹사성 고택.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한그루 의연함 심은 명재상이 그리워… 조선의 명재상 맹사성이 손수 심어 키운 600년 된 한 쌍의 은행나무.

마주보고 서 있는 두 그루 은행나무 모두 맹사성이 함께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모에서는 서로 적잖은 차이를 보인다. 나무 앞 보호수 안내판에 나무의 키가 35m, 줄기 둘레가 9m라고 돼 있다. 하지만 이는 한창 때의 규모다. 지금은 키나 줄기 둘레 모두 안내판의 수치보다 작아 보인다. 특히 중심이 되는 줄기가 썩어 부러져 나간 나무는 줄기 둘레를 측정하기도 어렵다. 하나의 줄기보다는 줄기 바깥에 무성하게 돋아나 자란 맹아지(萌芽枝)의 규모가 커서 측정할 기준조차 적당치 않기 때문이다. 중심 줄기가 없어 허전한 느낌을 자아내지만 무성한 맹아지 탓에 여전히 거목의 기품은 잃지 않았다.


둘 중에 작은 나무는 키와 줄기 모두 훨씬 작다. 똑같은 특징을 지닌 같은 종류의 나무라도 지나온 세월이 길다 보니 자연스레 드러난 차이다. 작은 나무도 여전히 전체적으로는 튼실하고 싱그러운 자태를 잃지 않았다.


얼핏 보아서는 같은 시기에 심은 나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이 작은 나무에도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마주 선 나무에 비해서는 작지만 이 나무 한 그루만 놓고 보면 결코 작다 할 수 없다. 두 그루 나무가 나란히 서 있다 해서 사람들은 이 나무를 쌍행수(雙杏樹)라고도 부른다.


세월의 풍파에 숱한 가지가 찢기고 부러졌지만 나무는 여전히 열매를 무성하게 맺는다. 맹사성 고택 바로 아래 고택을 관리하기 위한 살림채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여기 머무는 신창 맹씨 21대손인 맹건식 노인은 해거리(한 해 걸러 열매가 많이 열림)하기 때문에 일정하진 않지만 잘 열릴 때면 두 가마 정도의 은행을 거뒀다고 한다.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한그루 의연함 심은 명재상이 그리워… 가을에 노랗게 단풍든 이파리로 무성한 맹사성의 은행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한그루 의연함 심은 명재상이 그리워… 세 명의 정승을 기리며 '삼상정(三相亭)'이라고도 부르고, 세 사람이 제가끔 세 그루씩 아홉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 해서 '구괴정(九槐亭)'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나무가 점차 기력을 잃어가면서 열매는 더 줄었다. 적으나마 은행이 열리면 고약한 냄새에도 잘 갈무리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자랑스러운 선조의 향기를 고스란히 이어가는 후손들의 너그러운 마음씨가 담긴 일이다.


한 쌍의 늙은 은행나무에서 그 나무를 심은 옛 사람이 떠오르는 건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의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태 때문이다. 선거 때만 되면 아무에게나 고개 숙이고, 심지어 길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맥빠진 정치인들을 무수히 보았다. 요즘에도 이런 야비한 행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선거가 끝나고 벼슬자리에 오른 뒤까지 지금의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는 정치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모두 아는 일이지만,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바뀌지 않는 파렴치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제 할 일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고 말만 번드르르 내세우는 것도 여전하다.


나무를 심고 애지중지 키운 맹사성은 세종이 '태종실록' 완성 이후 미리 보자고 했을 때 이렇게 간언했다. "실록에 기재된 것은 모두 후세에 보이려는 지금 실제의 일입니다. 전하께서 보신다 하더라도 또한 태종을 위하여 고치지는 못할 것이며, 이제 한 번 보시게 되면 후세의 임금이 본받을 것이므로 사관이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사실대로 기록하는 직분을 다하지 못할 것이니, 무엇으로 장래에 신실(信實)함을 전하겠습니까." 이에 성군(聖君) 세종은 맹사성의 간언을 따랐다고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李肯翊·1736~1806)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전하는 이야기다.


벼슬하기 전과 후가 전혀 다르지 않게 겸손하되 꼿꼿한 자세로 일관한 맹사성의 삶이 그리운 계절이다. 한 표 때문에 온갖 말과 행위를 서슴지 않는 이들. 이들에게 한 그루 나무를 심는 의연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현실에서 어질고 현명한 정치인을 찾는 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리라. 안타깝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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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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