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과 협상이 진전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새로운 길의 시한을 연말까지로 설정했다. 이는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하지 않을 테니 제발 대북제재를 완화해 달라는 고백이다. 또한 연말이라는 마지노선은 2020년이 제2의 고난 행군의 첫해라는 두려움의 표출이다. 특히 최고 존엄(?)이 내뱉은 말이 허언(虛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당면 현안이다. 문제는 연말이 다가와도 대북제재가 완화될 기미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 완화를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안했지만 북한의 제재 완화에 도움을 줄 여지는 거의 없다. 오히려 지난 20일(현지시간) '오토 웜비어 북한 핵 제재 및 이행 법'이 채택되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운신의 폭이 훨씬 좁아졌다. 이 법은 북한과의 불법 금융거래를 돕는 해외 금융기관에 제3자 금융제재를 의무화하고, 북한과 거래하거나 대북 거래를 도운 개인, 기관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 및 신규 계좌 개설을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북한은 스스로 정한 시한이 다가오자 표면적으로 강한 척하지만 내부적으로 '달러 기근'에 따른 초조한 모습이 노출되고 있다. 지난 10월 스톡홀름 노딜 이후 도발을 통해 초조함을 감추고 내적 위기를 모면하려는 상투적 행동이 나타났다. 이런 행동 전환의 시발점이 지난 2일 김정은의 백두산 방문이다. 백두산에서 '백두산 정신'을 강조한 것은 새로운 길로 가겠다는 결단이다. 2차례의 '백두산 엔진' 연소실험 후 '전략적 핵 억제력 강화'를 언급한 것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 확고히 하겠다는 의미다. 지난 21일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어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논의한 것도 새로운 길을 위한 포석이다.
북한의 방향 전환은 다시 '벼랑 끝 대결(brinkmanship)'로 가겠다는 의미다. 북핵 위기 30여년간 '벼랑 끝 대결'의 역사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분명하다. 대화와 협상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오히려 북한의 핵능력을 강화시켜 왔다는 사실이다. 대화와 협상이 북한을 60여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9번째의 핵보유국(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의 군비군축연감)이 되도록 일조했다. 또한 핵은 김정은의 장기독재를 위한 필수품이라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그래서 지난해 '김정은은 비핵화 의지가 있고 핵을 폐기할 것'이라는 정부의 공언은 허언이고 희망고문이다.
이제 김정은의 핵폭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접근이 요구된다. 우선 대북제재가 북핵 폐기의 유일한 평화적 수단이라는 점과 대북제재의 실질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북한의 4차 핵실험(2016.1.6) 이후 대북제재의 실질적 타깃이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에서 북한 경제를 직접 겨냥하자 제재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2018년의 대외수출은 85% 이상 줄었고 정유도입 도입량도 500만배럴에서 50만배럴로 감소했다. 해상에서 석탄 밀수출과 석유류 밀수입이 발생하는 것도 제재 때문이다. 10만여명의 해외노동자도 송환하면서 외화벌이도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북한 경제를 겨냥한 제재가 달러 기근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2017년 이후 4차례의 대북제재는 회원국들에 '강제성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음성적 거래를 차단하는 기폭제로 작동하고 있다.
김정은의 벼랑 끝 대결은 핵을 만능의 보검으로 삼아 장기집권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길은 더 강력한 제재를 촉발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촉발시킬 것이다. 바로 대북제재가 북한의 근원적 변화의 촉매제이다. 그래서 북한의 '올바른 길'을 위해 국제공조의 대북제재는 지속되어야만 한다.
조영기 한선재단 선진통일연구회장·국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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