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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어느 어촌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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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어느 어촌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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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쯤, 동해바다를 낀 가난한 어촌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귀에 바깥세상이 천지개벽할 정도로 변하고 있다느니, 엄청난 크기의 고깃배를 봤다느니 하는 소문이 들린 시기도 이 무렵이었다. 작은 고깃배 몇 척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이 마을 사람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바다 건너 사람들처럼 우리도 잘만 하면 사시사철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마을 회의 끝에 일단 여기저기서 자금을 융통해 큰 배부터 장만하기로 했다. 드디어 큰 고깃배 세 척이 마을로 들어왔다. 비록 이장님과의 친분 관계로 큰 배들이 배정됐다는 쑥덕거림은 있었지만, 당시에는 큰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이 배들은 앞바다와 먼바다를 오가며 명태며 방어를 수확해왔다. 매일 밤 어촌에는 흥에 겨운 만선가가 울려 퍼졌다.


큰 배 세척을 보유한 집들의 가세는 하루가 다르게 번성해갔다. 기와집이 올라가더니 이내 2층 양옥집으로, 다시 미끈한 건물들이 지어졌다. 이 집들은 더 큰 배들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망망대해까지 나간 배들은 한두 달 후에 값비싼 생선들을 가득 싣고 귀항했다. 마을의 변화 속에 큰 배를 소유하지 못한 어민들도 열심히 노력했다. 더 효과적인 조업 방식을 연구했고, 비록 먼바다로는 못 나가지만 앞바다 파도에 맞서며 밤낮으로 일한 결과 작은 모터 정도는 장착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흔하던 도루묵이며 가자미가 점점 없어지기 시작했고, 애써서 던져놓은 그물이 빈 그물로 올라오기 일쑤였다. 그리 오래지 않아 지속되는 흉어의 원인이 바로 큰 배들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그들은 산란기의 수확량 조절이나 치어들의 방생과 같은 오랜 불문율을 어기기 시작했고 남의 그물 속을 헤집고 들어왔으며, 멋대로 자기 구역을 정해 작은 배들은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것처럼, 어구며 폐그물을 바닷속에 버리기도 했다. 이렇게 앞바다가 황폐화돼버린 이 마을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두자.


몇 년 전부터 벤처업계는 한국의 복합적 경제 위기의 돌파구로 자본과 시장을 보유한 대기업과 핵심 기술 및 혁신 DNA를 보유한 벤처기업 간의 협력 모델을 대한민국의 경제적 대안으로 주창하고 있다. 단순 의견 개진이 아니라 개별 대기업들을 접촉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개방협력(open innovation) 모델을 제안해왔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들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이미 우리는 글로벌시장에서 우수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지만 국내에는 대상 기업이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이다. 분명히 일부는 맞고 명백히 일부는 틀린 말이다.


대기업들이 간과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 첫째, 스스로 황폐화시킨 앞바다의 생태계를 이제 와서 탓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들이 해외에서처럼 제값 주고 국내 벤처기업들의 우수 기술을 구매한다면 앞바다 벤처 생태계는 금방 회복할 수 있다. 둘째, 세계적 핵심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은 웬만해선 국내 대기업과의 접촉과 거래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술을 빼앗기고 원가 공개를 강요당한 그간의 학습 효과다. 최근 일본과의 경제 마찰에 대한 대응책으로 정부는 부품ㆍ소재산업의 국산화와 관련 강소기업의 육성을 추진한다고 한다. 많은 재정이 투입된다고, 애국심에만 호소한다고 뚝딱 산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바로 앞에 보이는 벤처 생태계를 복원하고 정당한 거래만 이뤄진다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벤처업계가 목 놓아 외치는 이유이자, 정부와 대기업이 직접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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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벤처기업협회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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