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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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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흐의 꿈 김보라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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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특히 예술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서는 종종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현대의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화가 중 한 명이다. 이미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아 그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가 생산되고 있고 그에 관한 전시는 세계 곳곳에서 열리며 그의 작품은 독보적으로 비싸다. 그런데 이처럼 유명한 고흐를 우리는 진정 잘 알고 있을까.


고흐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몇몇 있지만 내가 고흐를 더욱 깊이 바라보게 된 곳은 프랑스와 인접한 벨기에의 작은 마을 몽스(Mons)다. 이 마을은 고흐가 화가가 되기 전인 1878년 12월부터 1880년 10월까지 머문 곳이다. 몽스는 그 무렵 착취와 사고가 빈번한 탄광촌이었다. 프랑스 광산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을 담은 에밀 졸라의 1885년작 '제르미날(Germinal)'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고흐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브뤼셀에서 연수를 받고 이곳 탄광촌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곧 노동자들의 생생한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곳 사람들에게는 설교보다는 생존을 위한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흐는 탄광촌 주민들처럼 빈궁한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돈과 음식을 나눠주고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성직자로서 사명을 다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그의 이러한 행동은 지나치다 하여 오히려 교회에서 그를 제명하는 계기가 됐다. 고흐는 결국 목사가 되려는 꿈을 접고 운명처럼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몽스에는 고흐가 1880년 6월부터 10월까지 머문 집이 '고흐의 집'으로 보존돼 있다. 그곳은 광산 감독관의 집으로 고흐가 방을 빌려 생활한 곳이다. 한 세기 동안 버려져 있던 집을 1976년 몽스시가 구입해 기념관으로 되살렸다. 그곳은 마치 고흐가 살던 시간을 그대로 마주하는 듯 적막하고도 쓸쓸했지만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청년 고흐가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하며 자신의 미래를 꿈꿨을까. 소박한 책상에 놓인 굵은 연필과 빅토르 위고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10년, 짧지만 자신에게 매우 엄격했던 화가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고흐는 장 프랑수아 밀레를 존경해 그의 작품을 주로 모사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몽스는 고흐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 이상으로 어떤 화가가 돼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의미 있는 곳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노동자들, 농부와 방직공, 소박한 이웃들의 일상은 이곳에서 그의 예술적 주제로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됐다. 화가의 꿈이 발아된 몽스는 과거의 암울한 시대를 뒤로하고 2015년 유럽의 문화도시로 선정됐다.


고흐의 편지를 읽다 보면 그가 사람과 자연, 예술을 바라보는 순수함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그의 신념은 작품세계에 그대로 투영된다. 고흐는 자신의 작품이 고고한 미술관이 아닌 카페나 학교 같은 일상 속 공간에 전시되길 원했다. 그러나 고흐의 꿈은 생전에도,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고흐의 꿈을 대신 이루려는 사람이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도미니크 얀선스 반고흐재단 대표다. 그는 예정된 운명처럼 고흐가 생을 마감한 프랑스의 오베르쉬르우아즈의 라부여인숙을 구입해 1993년부터 기념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고흐는 1890년 5월20일부터 7월29일까지 머물며 8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반 고흐의 꿈' 프로젝트는 그 작품 중 하나를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부를 통해 구입해 라부여인숙 5번 방에 전시하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감동과 전율이 가득한 미술관을 상상해본다.


이제는 너무도 값진 고흐의 작품을 과연 그 초라한 여인숙에서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예술 작품 본연의 맥락으로 환원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고흐 작품의 천문학적인 가격보다 고흐의 방에서 작품과 함께 느끼는 숨결에 더 가치를 두게 된다면 말이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게 된 첫 마음에 닿아 오랜 화가의 꿈이 이뤄지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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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큐레이터ㆍ성북구립미술관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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