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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53]판테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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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53]판테온에서 윤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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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은 신들의 집입니다. 기원전 27년 아그리파가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처음 세웠는데 두 차례나 화재를 당합니다. 기원후 120~124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그 자리에 새로 세운 것이 오늘의 판테온이지요. 고대 로마가 다신교 사회였으므로 판테온은 만신전(萬神殿)이었습니다.


판테온은 불가사의한 건축입니다. 원통형 주공간 내부 원의 지름과 천정 높이가 똑같습니다. 43.3m. 돔 천정은 건축 전체 높이의 절반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부어 만들었지요. 원통 위에 반구(半球) 모양의 큐폴라(cupola)를 쌓아 얹는 방식이었습니다. 상부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최적의 수학적 균형을 찾았기 때문에 가능했지요. 기둥 하나 없는 건물. 내부 벽면 두께가 6m. 위로 갈수록 얇아져서 돔의 최상층 벽의 두께는 1.5m가 됩니다. 자칫하면 붕괴되는 구조. 수학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판테온은 불가사의한 성취입니다.


판테온은 건축생물학의 시조입니다. 천정 중심부가 뚫려 있지요. ‘눈[目]’을 뜻하는 오쿨루스(oculus). 지름이 9m나 되니 하중이 덜어져서 건축적 안정성에 기여합니다. 햇빛 별빛이 여기로 드나들지요. 원조 자연채광입니다. 신들의 집답게 소나기도 드나들지요. 신전 안에 들어온 빗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가지만 남겨진 빗물은 제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위가 뚫린 돔형 공간에선 상승 기류가 강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빗물은 금세 증발하지요. 에너지 순환! ‘열린 몸’의 비유를 건축생물학적으로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건축도 생명체이며 에너지를 순화시켜야 한다는 발상이 2천 년 전 만신전에 구현되어 있습니다. 사람과 신이 만나는 집 판테온. 인체에 비유하면 정수리의 제7차크라가 시원하게 뚫린 열린 몸의 건축입니다.


판테온은 상상하는 집입니다. 돔의 내부 디자인, 특별히 흥미롭지요. 아래쪽 둘레에 정사각형 무늬가 음각으로 파였는데 사각형 크기를 계단식으로 줄여 안쪽으로 4개를 만듭니다. 가장 아랫줄에 28개가 있고 상층부까지 5줄이 있으니 전체 140개. 위로 갈수록 사각형의 크기는 작아집니다. 요즘 컴퓨터라면 덜어낸 재료의 양을 계산해서 건축물의 하중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 테지요. 2천 년 전에 이런 계산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윤재웅의 행인일기 53]판테온에서

4와 28은 혹시 숫자의 천문학? 4는 사계절을, 28은 달이 하늘을 일주하는 기간인 28일을 표현한 게 아닐까요? 오쿨루스가 하늘의 눈[目]인 태양을 상징한다면 달의 상징은 스물여덟 개의 사각형일 테지요. 5는 호기심으로 남겨둡니다. 삶이 두고두고 즐거우려면 미지(未知)를 남겨두는 게 지혜입니다. 검색하는 인간, 호모 서치앤스(Homo-Searchens). 만사검색이 능사는 아닙니다. 자칫하면 디지털의 노예가 되고 말지요. 오래 곱씹고 꿈꾸는 아날로그도 중요합니다. 아날로그 판테온. 직감과 느낌으로 신을 만나는 집. 현장 체험이 답입니다.


20년 전에 경주 석굴암과 로마 판테온을 비교건축학적으로 다룬 책을 보았습니다. 저자는 미술사가나 건축학자가 아닌 아마추어 연구가였는데 강호의 숨은 고수였지요. 그의 책 속에 석굴암과 판테온의 구조적 유사성을 입증하는 실증자료들이 풍성했습니다. 평면구성과 입면구성에서 쌍둥이처럼 일치하는 도상 자료들. 우연의 일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학적 비례와 건축 원리의 유사성을 확인하면서, 통일신라가 한반도의 협소한 주인이 아니라 세계문명과 활발히 교류하는 ‘열린 국가’일 가능성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판테온의 건축 공법이 어찌 로마에만 머물렀겠습니까. 동진하고 서진해서 세계 전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석굴암이 판테온과 비슷하다 해서 부끄러울 게 없습니다. 우리 불교미술의 독창성이 사라지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세계문명의 교류가 1300년 전 한반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게 훨씬 더 흥미진진합니다.


학문의 세계는 정확한 설명과 창의적 해석이 기본입니다. 새로운 자료의 수용과 오류에 대한 인정 그리고 이를 수정하는 용기도 필요하지요. 그가 후속 저작을 통해 새로운 주장을 펼쳐도 학계는 잠잠합니다. 집단 따돌림이나 침묵의 카르텔이 능사는 아니지요. 누구라도 진정성 있는 주장을 펼친다면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문화의 저력이고 건강한 개방성일 테지요. 판테온. 정수리의 백회혈이 회통하는 열린 몸의 건축. 몸이 열리듯 국가도 열리고 우리들 마음도 열려야 합니다.


로마 시내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판테온의 건축 비밀을 다룬 책을 한 권 구합니다. 심봤다! 약초꾼이 산삼 본 듯 반갑습니다. 이탈리아 원서지만 경이로운 수학적 비례와 도면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 책. ‘판테온의 비밀스러운 조화미’. 석굴암미학연구소 성낙주 소장님께 이 책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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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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