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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한국이 게임산업에서 놓친 기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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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한국이 게임산업에서 놓친 기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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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아들 카이로스의 머리는 특이하다. 앞머리는 숱이 무성하지만 뒷머리는 대머리다. 카이로스의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그를 발견한 사람이 머리채를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뒷머리는 대머리이기 때문에 붙잡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발에 날개가 달려 있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여기서 카이로스는 기회를 상징하는 신이다. 그는 기회가 왔을 때 잡지 않으면 놓치고 나서 후회한다는 교훈을 가르쳐준다.


이런 교훈이 있음에도 인간은 항상 기회가 지나간 다음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한때 한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글로벌 혁신 산업이던 게임도 마찬가지다. 20여년의 짧은 산업 역사에서 돌이켜보면 우리가 놓쳐버린 많은 기회가, 한국이 글로벌 사회를 제패할 수 있던 황금 같은 기회가 있었다.


그런 '카이로스' 중 하나는 가상통화다. 이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까지 가상통화를 발행하겠다고 다투어 나서고 있지만 가상통화의 기원은 1997년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서 발행한 '아데나'였다. 필자가 게임상의 가상통화에 대한 논문을 이미 2003년에 썼지만 그동안 아무도 눈길도 안 주다 비트코인이 글로벌 이슈가 되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지금은 가상통화산업에서 한국은 후진국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게임 엔진도 있다. 한국의 게임이 일본시장을 주름잡던 무렵 일본의 한 지인이 이렇게 조언한 적이 있다. '한국 게임의 기술력은 최고인데 왜 표준화된 개발 엔진을 만들어 판매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일리가 있어 한국 게임사에 말해봤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자사의 개발력이 게임 엔진에 축적돼 있기 때문에 엔진 판매는 개발 노하우 유출이라는 것이었다. 세월이 지나 지금 한국의 거의 모든 게임사는 미국의 유니티나 언리얼 또는 독일 크라이텍의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스팀(STEAM) 같은 게임 플랫폼 사업도 한국은 거의 동시기에 출발했지만 지금 글로벌시장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게임 플랫폼 사업은 옛 정보통신부의 글로벌서비스프로바이더(GSP) 사업과 유사하다. GSP 사업은 민간의 글로벌 서비스 역량이 부족해 사장되는 게임을 플랫폼에 올려 해외시장에 진출시키자는 취지로 시작돼 상당수의 한국 게임이 기사회생하는 데 공헌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하에서 정통부의 게임 사업이 문화체육관광부에 흡수되면서 GSP 사업도 소멸하다시피 했다. 그 와중에 미국의 스팀 플랫폼은 성장했고, 지금은 2억명의 이용자가 가입하고 동시접속자 수는 1300만명에 이르는 독점적 게임 플랫폼이 돼 있다.


굳이 또 하나 예를 들자면 PC방이 있다. PC방 역시 한국이 만들어낸 혁신적 유통 모델이다. 그리고 이 PC방 모델은 2000년대 초반 한국을 넘어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 전 세계로 확산돼 나갔다. 하지만 이 중요한 시기에 한국의 PC방 사업자들은 소규모의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 그 어느 국가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한국이 '카이로스'들을 놓친 이유야 백 가지라도 들 수 있을지 모른다. 메이저 게임사의 근시안적 비즈니스와 보수적 경영, 정부의 무능과 게임산업의 본질에 대한 무지, 게임에 대해 '마녀사냥'을 서슴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 등등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떠나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이제 게임산업에서 그런 천재일우의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올해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게임 질병코드를 국내에 도입하고자 하는 집단이 있다. 이들에게 20여년의 세월 동안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말하는 것은 '쇠귀에 경 읽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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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 중앙대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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