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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독서] 홀로코스트와 침략자의 논리가 뒤섞인 '제노사이드'의 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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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반인륜범죄 심판의 탄생기 추적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의 손에서 태어났지만...열강의 침략 명분으로 변질
2차대전 승전국들과 이스라엘이 벌인 '제노사이드'에는 침묵


[기자의 독서] 홀로코스트와 침략자의 논리가 뒤섞인 '제노사이드'의 탄생기 (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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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부터 북한의 평양까지 아시아 전역에 세워져있는 독재정권들과 그 꼭대기에 올라선 독재자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된 국제법상 죄가 있다. 바로 '제노사이드(Genocide)'와 '인도에 반하는 죄(Crimes Against Humanity)'다. 이들이 벌인 소수민족이나 자국 정치범에 대한 인권유린, 구금, 학살 등은 전 세계적 공분을 일으키며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 되곤 한다. 이후 발생하는 내전과 열강들의 개입, 독재자의 체포와 재판 과정까지 이 두 가지 국제범죄는 독재자와 그를 추종하던 수뇌부들에게 끝까지 따라붙는다.


매일 한번쯤은 뉴스에서 볼법한 이 익숙한 국제법상 범죄는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던 한 국제인권변호사의 추적 기록을 담은 책이다. 저자 필립 샌즈(Philippe Sands)는 이 두 국제법을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허쉬 라우터파하트(Hersch Lauterpacht)와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이란 인물들의 생애를 추적하다가 두 사람 인생의 공통분모로 남아있는 우크라이나 서부의 리비우(Liviv)란 도시와 마주치게 된다.


우연의 연속인지 이곳은 저자의 외할아버지 레온(Leon) 또한 인생 대부분이 얽혀있는 곳이었다. 이 세 인물의 행적을 중심으로 이들이 리비우란 곳에서 함께 겪었던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는 제노사이드란 단어와 개념의 탄생에 주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1914년부터 1945년까지 30년 남짓 짧은 기간 동안 무려 주인이 8번이나 바뀐 혼돈의 땅에서 펼쳐졌던 갖가지 비극들과 2차 대전 전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전범재판 과정에서 벌어졌던 에피소드들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기자의 독서] 홀로코스트와 침략자의 논리가 뒤섞인 '제노사이드'의 탄생기


책의 전체 배경이 되는 리비우란 지역은 그곳에 사는 지역민들조차 모두 각자의 언어로 부르는 지명이 다를 정도로 여러 민족들이 함께 모여 사는 땅이었다. 사실 리비우는 우크라이나식 표기이다.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독일어로는 렘베르크(Lemberg), 폴란드어로 르부프(Lwow), 라틴어로는 레오폴리스(Leopolis), 러시아어로는 리보프(Libbob)라 불린다. 저자는 이 도시의 지배자가 바뀔 때마다 그 지배자의 언어로 도시 명을 바꿔 썼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그곳에 사는 인생 전반기동안 수없이 많은 새 여권을 발급받으며 느낀 고뇌를 독자들에게 직접 안기기 위함이다.


이렇게 이질적인 민족들이 오스트리아 제국이란 깃발 아래 500년간 모여살 수 있었던 이유는 이곳이 중세시대부터 이슬람과의 전쟁에서 최전선지역이었기 때문이다. 1683년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을 침공한 오스만 투르크 군을 물리친 기독교의 영웅, 폴란드 국왕이던 얀 3세 소비에스크(1629~1696)의 일대기가 남은 이곳은 이슬람 침략자로부터 유럽을 지켜내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이 있었기에 오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허약해지고, 그리스와 발칸반도 내 대부분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짓누르고 있던 민족주의란 괴물이 본격적으로 꿈틀대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독일제국이란 열강들의 이해관계는 이 민족주의와 맞물려 움직였다. 결국 1차 대전의 패전국이 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919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에 의해 수십 개로 쪼개지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업적과 전혀 관계없이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민족 개념인 '유태인'이란 낙인 하나로 이 지역에서만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살된다.


이 끔찍한 학살극을 겪어낸 라우터파하트와 렘킨 박사는 다시는 민족이란 애매모호한 개념 하에 무고한 개인이 학살당하는 참극을 막기 위해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하는 죄를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인류 공통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심판 개념은 그들이 처음 고안한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어 나간다. 더 크나큰 국제전을 만들기 위한 정치 외교적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기자의 독서] 홀로코스트와 침략자의 논리가 뒤섞인 '제노사이드'의 탄생기 오늘날 우크라이나 서부에 위치한 도시 리비우(Liviv/붉은색 표시지역)는 1차대전 종전 이후 주인이 무려 8차례나 뒤바뀔 정도로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던 지역으로 나치독일 점령 당시에는 유태인 학살이 벌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14세기 이후부터 이슬람 세력과의 최전선지대로 수많은 민족들이 종교 앞에 하나가 되어 살던 땅이었다.(지도=구글맵)


저자는 애초부터 이 반인륜범죄에 대한 처벌 개념이 침략자의 명분으로 얼마든지 호도될 위험성이 있었음을 여기저기서 보여준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도 이런 개념에 처음 손을 댄 것도 침략자들이었다. 리비우부터 스위스와의 알프스 국경까지 유럽 중부에 수천 킬로미터에 걸친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교육을 받고 자라난 지식인들의 손에서 이와 같은 각종 국제법이 탄생했다. 이러한 논리는 약소국이 아니라 수십 개의 민족을 지배하면서 수많은 문화와 언어, 이로 인해 발생하는 오해와 분쟁을 해결할 필요가 있는 '제국'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홀로코스트의 직접 가해자인 나치독일의 법학자들 역시 세계 지배를 위한 인류 공통의 규범 연구를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반인륜범죄에 대한 처벌 개념에 대해 나름의 균형감각을 유지하려 노력한 책이지만 역시 불편한 부분들은 존재한다. 다소 감성적으로 흘러가는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미국의 유태자본에 의해 매해 생산되는 헐리웃 영화의 클리셰를 따라간다. 그 끔찍한 홀로코스트를 겪었던 유태인들의 나라,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의 200만 주민을 고사시키기 위해 사막 한가운데 장벽을 치고 우물을 파괴하고 있는 현실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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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독일과 똑같이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하는 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재판이나 제재를 받지 않은 나라들의 민낯 역시 떠오른다. 추악한 과거사 앞에 늘 당당한 일본의 배후에는 자신들의 식민지에서 독일보다 더 끔찍한 제노사이드를 펼쳤던 영국, 프랑스, 미국 등 2차 대전 승리자들이 버티고 있다. 2차 대전 승리자들이 제3세계에서 벌였던 학살극은 제노사이드가 아닌 것일까? 저자에게 직접 묻고 싶은 부분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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