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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오이꽃/김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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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어머니 오이씨를 뿌리셨다

아파트 화단 흙을 퍼 올까 생각했지만

땅의 모서리를 훔쳐봤지만

단단하고 푸석해서 망설이다가

고봉 산자락 밑 흙을 빈 화분에 가득 채웠더니

아침나절 두 손으로 흙을 만드셨다

흙이 기름지다며

뼈 드러난 손으로 새 땅 빚으시더니

간밤 손바닥에서 반짝거리던 별을 심으셨다


씨 뿌리고 가신 후에


물은 잘 주고 있는지 싹은 나왔는지 너무 촘촘하면 옮겨 주어야 한다 창문은 활짝 열어 놓고 줄기 뻗으면 막대를 구해서 잘 세워 주어야 한다 전화벨 소리, 시간의 길이를 재셨는가 무게를 달고 계셨는가 첫 오이꽃 피던 날 이른 아침 꽃의 안부를 물으셨다


꽃이 피었다

샛노란 오이꽃이 다닥다닥 필 줄이야

피었다가 떨어지고 피었다가

떨어져 여름 내내 꽃만 피우더니 오이는 열렸을까


한여름 밤 어머니의 오이꽃 별자리에서 별들이 뜨고 있었다



[오후 한 詩]오이꽃/김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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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써야 한다는 거다.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꽃이 핀다. 그래야 사람이 자란다. 사랑이란 "이른 아침"부터 "꽃의 안부"를 묻듯 지극한 것이다. 이 세상의 어머니들은 누구나 우리를 그렇게 키우셨다. 우리는 어머니의 손금과 걱정과 보살핌을 따라 나고 자라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저마다 별이고 꽃인 까닭은 모두 어머니 때문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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