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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윤의 책섶] 여자들의 恨 풀어낸 ‘씻김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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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80명 인터뷰로 목도한 몸이 말하는 사회적 아픔
이를 정화하는 퍼포머 조아라의 유쾌한 제안 ‘목욕합시다’

[김희윤의 책섶] 여자들의 恨 풀어낸 ‘씻김굿’ 연극 '목욕합시다' 공연의 한 장면. 사진 = bodysoundspeakjoah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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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지난 주말 찾은 목욕탕, 옆에 앉은 모녀의 대화가 참 재미나다. 연신 딸의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는 엄마는 “초코우유 사줄게, 앉아봐~”라며 특급 장비 ‘이태리타월’을 꺼내 들고, 사색이 된 딸은 “내가 애야?” 하며 냉탕으로 빠르게 도망친다. 사춘기 소년이 남몰래 상상하고, 중세부터 남성이 기를 쓰고 엿보려 했던, 여자 목욕탕의 속살은 사실 은밀하고 도색적인 장면과는 거리가 멀다. 가공할만한 수압의 냉탕 폭포샤워를 가뿐히 맞는 어머니, 발만 담갔을 뿐인데 살과 발톱 사이로 틈입해오는 무시무시한 열기에 나동그라지는 소녀와 달리 탕 안에 앉아 태연히 “시원하다” 시는 할머니, 형형색색 이태리타월 과 오늘의 마사지 재료로 경합을 벌이듯 현란한 손놀림을 뽐내는 이모들까지. 키 작은 꼬마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진짜 여성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한눈에 펼쳐지는 알몸 오디세이, 바로 여자 목욕탕의 풍경이다.


2차 성징이 시작됨과 동시에 소녀는 하루 14시간씩 (아마도) 평생 하게 될 브래지어를 차고, 더는 운동장의 패권을 두고 소년들과 경쟁할 수 없으며, 은연중에 ‘조신’과 ‘얌전’을 강요받고 자라나 어디선가 담배 한 대 피우는 중에 지나가는 할아버지로부터 “여자는 아기를 잉태할 몸이고!”라며 역정을 얻어듣게 될지 모른다. 사랑하는 이와 어렵사리 가정을 이루고도 출산과 육아에 일을 내려놓는 순간 커리어와 자존감 모두 그곳에 멈춰선 채 침잠하고, 어느 날 그친 월경을 마쳤다(完)고 하지 않고 막혔다(閉)고 표현하는 내 가족, 내 친구의 말에 녹아든 폭력적 인식에 상처받고 절망할 수도 있다. 이렇듯 자신도 모르는 새, 사회가 규정하는 이상의 기준에 갇혀 괴로운 이 땅 위의 여성 80명 각각의 소리를 한데 모은 공연가 조아라는 이를 자신의 몸, 소리, 말로 승화시켰다. 책 <목욕합시다>는 그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여성들의 한을 제 몸으로 풀어낸 무녀의 ‘씻김굿’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다.


[김희윤의 책섶] 여자들의 恨 풀어낸 ‘씻김굿’ 목욕합시다/조아라 지음/1도씨/1만5000원

그가 만난 한 17세 소녀가 읊조린 과학책에 실린 피임방법 6가지는 다음과 같다. ‘맨 위에 자연주기, 두 번째는 피임약, 세 번째는 정관수술, 네 번째가 콘돔, 다섯 번째는 나팔관 수술, 여섯 번째가 자궁 내 수술’ 소녀는 콘돔을 쓰라고 하는 게 가장 안정적이고 쉬운데 왜 자연주의 계산법을 먼저 언급하는지 짜증이 솟는다. 한 27세 여성은 성추행 피해자로 경찰서에 갔을 때 경찰로부터 “아가씨 어떤 옷 입고 있었어요? 술 먹었어요?”란 질문을 받고, 이내 어머니와 통화에서 “집에 빨리 들어가야지, 여자애가 늦게까지 돌아다니다 그런 일을 겪냐”는 힐난까지 더해지자 추행한 남성에게 물린 어깨를 손으로 감싸 안고 여성으로 사는 불편함에 분개한다.


‘여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겪은 상황과 경험들은 다채롭고 쓰라리며 폐부를 찌른다. 낙태와 성폭력은 엄연히 고통인데, 아픈 사람에게 갖는 안쓰러움과 연민보다 행실에 대한 비난과 편견이 선행되며, 이는 오롯이 그 주체가 ‘여성’임에 수렴된다. 어느 미혼모의 유기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사회는 아이를 유기한 그녀를 손가락질하고 그녀를 유기한 남자에 대해선 침묵했다.


현행 형법 269조와 270조는 낙태한 여성과 시술한 의사의 처벌을 규정하고 있지만, 대한산부인과 의사회는 하루 평균 3천 명이 낙태 수술을 받는 것으로 추정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국내 미혼모·미혼부 가족은 약 3만 3천 명, 이 중 미혼모는 2만4천 명으로 전체의 72.3%를 차지하며 한부모 가족 40% 이상이 차상위 계층 이하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의 미혼모는 위자료 청구 소송을 시도했다 내내 꽃뱀으로 내몰리고, 아이의 친자 여부가 확인된 후엔 친권과 양육권 강탈 위협에 노출되며 재판에 이겨도 양육비 지급 이행률은 32%에 그치고 있다.


조아라는 그런 여성의 몸, 세상과 여성 사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상처로 얼룩진 그 몸들에게 씻김굿 이란 제의를 통해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여기저기 엉키고 맺힌 때를 정성스레 씻어보자며 이태리타월을 흔들며 “목욕합시다”고 외친다. 딱 나흘 올린 그의 굿판에 미처 참여하지 못한 이들에게 이 책은 건너 건너온 내밀한 고백 편지이자 고요한 추체험으로의 초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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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합시다/조아라 지음/1도씨/1만5000원>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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