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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스물네 살/이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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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하나가 겨우 차 있고 방 속에 작은 창이 겨우 차 있고 작은 창을 비집고 햇빛이 겨우 내려앉는 이곳에 내가 겨우 들어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사는 곳을 원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방 하나라는 뜻도 되고 방 하나에 사람 하나라는 뜻도 되었습니다 이곳엔 방 하나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좁은 방엔 채울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집을 비워 두고 살았습니다 모두가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모두가 금방 떠날 것 같은 기분으로 방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비워진 방은 넓었습니다 넓은 곳에 내가 놓여 있어서 나는 무서워집니다 불 꺼진 방 안에 누워 있으면 나는 떠오릅니다 누군가 나를 작은 배에 넣고 바다에 버려두고 간 것 같습니다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흘러가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하늘 끝에서 비집고 들어오는 빛이 근근이 보이지만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밝게 빛나는 건 있어서 이불을 머리 위까지 올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바다에 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오후 한 詩]스물네 살/이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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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스물네 살이어서가 아니다. 다만 스물네 살이어서 "방 하나가 겨우 차 있고 방 속에 작은 창이 겨우 차 있고 작은 창을 비집고 햇빛이 겨우 내려앉는 이곳에 내가 겨우 들어차 있"는 게 아니다. 만약 다만 스물네 살이어서 아직 한창나이라서 그렇다면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밝게 빛나는" 저곳을 향해 열심히 헤엄쳐 갔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행복하다고 했을 것이다. 다만 스물네 살이어서가 아니라, 서른두 살도 쉰일곱 살도 마흔세 살도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젊은이도 "모두가" 이 세상에서 버려지긴 "마찬가지"라서 그래서 "이불을 머리 위까지 올리고 눈을 감"는 것이다. 도무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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