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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고스톱 삼매경/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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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마을 할매들 독서 삼매경이다 첫 장을 넘기면, 동영댁 손자는 서울서 집도 샀다며 도시 나가 집 사기가 그리 쉽나 이 동네 다 팔아 봐야 겨우 코꾸정만 한 아파트 하나 산다 안카나 용타 용해, 노리미댁 빨리 받아라, 우리 아는 일본 가 있다 도꼬, 논밭 팔아 사업한다고 쫓아다니더만 다 말아무뿟는가 우쨌는가 명절에도 어짜다 들어오는기, 바리바리 돈 보따리 싸 오라 캤나 내 살 날 얼마나 남았다고, 아따 이놈은 와 이래 무겁냐 밑장에 붙어서 안 떨어지는 세 번째 장 넘어간다 용식이 마누라는 결국 도망갔다 카데 새끼까정 놔두고, 요새는 외국 가스나들도 촌에는 안 올라카니 원용이도 베트남 처자 데리온다고 돈 챙기 주쌌터만 결국 돈만 날맀다 아이가, 가자 가자 동네방네 벌리 논 오지랖은 오므리뿌고 아이고 쌌뿟다 무운 것도 없는데 그만 스톱해라 스톱 영감탱이 밥 챙기러 가야제, 내는야 못 무도 고오 할란다 집구석에 밥해 줄 영감탱이도 없고 외지 나간 새끼들 무소식이 희소식이겄제 박이나 얼릉 면해라


복날 경로당 할매들 책 읽는 소리 펄펄 끓는다
무울 꺼 천지구만 안 묵고 뭐하노


[오후 한 詩]고스톱 삼매경/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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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겁도 없이 대한이가 소한이네 놀러 왔다가 얼어 죽었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동네 할머니들 지난여름 외단 만 고스톱경을 다시 펼쳐 읊조리신다. 원용이는 재주도 용하제, 어데서 고래 곶감만키로 이쁜 각시를 델꼬 왔다노. 공산에 명월이 떴으니 자 이라믄 또 고 해야제. 동영댁은 욕심도 태산이다, 엊그제께 증손도 봤다 카드만 오늘은 착착 붙네 마. 그라믄 뭐하노, 내사 이 벚꽃만 보믄 젊었을 적 원 없이 꽃구경 못 한 게 고마 아직도 천불이 난다. 근데 참 얄궂제. 어제 우리 영감이 중앙시장통서 용식이 마누라를 봤다 카든데, 번쩍거리는 외제 차에서 요래요래 사알 내리더라 안 카드나. 맞나? 솔밭에 깃들면 까치도 학이 된다 카드만 희한하네. 그런 말이 어데 있노? 있다 아이라, 아이고 또 쌌뿟다. 집에서 한 손 두 손 들고 온 옥춘이며 약과며 군밤이 저희끼리 데굴데굴 구르는 소한 지나 다음 날, 할머니들 한낮 내내 생짜 경을 외신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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