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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진실] 알지 못해 두려운, 조현병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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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향한 사회적 낙인이 환자의 치료 막아 증상 악화되기도
범죄 공포 확산됐지만 정작 전체 범죄 중 조현병 환자 비율 0.04% 그쳐

[오해와 진실] 알지 못해 두려운, 조현병의 진실 조현병 당사자 60여 명의 거처 마련과 회복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관악지부. 취재진이 이 곳을 찾은 날엔 조현병 당사자들의 체험수기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사진 = 최종화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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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최종화 PD] 살아 있다는 건,/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나의 몫은 이제 깊이깊이 가라앉는 일. 봐라/저 많은 세월의 개떼들이 나를 향해 몰려오잖니./물려 죽지 않기 위해, 하지만 끝내 물려 죽으면서/나는 깊이깊이 추락해야 해./발바닥부터 서서히 꺼져 들어가며. 참으로/연극적으로 죽어가는 게 실은 나의 사랑인 까닭에.
- 최승자 詩 <즐거운 일기> 중


어느 순간부터 귀에 환청이 들렸고, 자신도 모르게 헛소리를 내뱉다가 이내 소주 외엔 어떤 음식물도 섭취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자 남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 고시원과 여관방을 전전했다고 고백한 이가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The Guardian)은 번역문학 코너에서 그를 두고 “한국 문학계의 우상”, “1980년대 한국 시(詩)의 대명사”로 일컬었다. 엄혹한 시절, 통렬한 시어로 군사정권, 가부장 문화에 강한 반기를 들고 나선 시인은 그러나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2010년 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털어놨다. 시인 최승자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시대를 대표한 한 시인의 충격적 근황을 자극적으로 소비했지만 병증에 대한 이해엔 놀랍도록 무심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 잘 알려진 노벨경제학상 수상 수학자 존 내쉬의 조현병은 한 천재의 파란만장한 삶의 질료로 여겨졌지만, 강력범죄를 저지른 용의자의 조현병은 범행의 씨앗으로 치부됐고, 지난해 7월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강력범죄 사건이 잇따르자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여론의 질타와 사회적 공포가 빠르게 확산됐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전체 범죄 중 조현병 환자에 의한 범죄율은 0.04%이며, 치료와 관리를 받는 정신질환자의 범죄 가능성은 일반인의 강력범죄 가능성보다 현저히 낮다”고 발표했으나, 이미 사회에 만연한 공포와 선입견을 타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업적과 범죄 너머 조현병의 실체는 무엇이며, 당사자들은 어떤 증상을 겪는 것일까. 조현병 당사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오해와 진실] 알지 못해 두려운, 조현병의 진실 명문대 졸업 후 대기업 입사까지 모두가 선망하는 길을 걷던 김용규(가명) 씨는 신입사원 연수 중 참여한 연극을 통해 첫 조현병 증상이 나타났다고 고백했다. 발병 후 일체의 사회생활과 단절된 채 그는 20년째 투병 중이다. 사진 = 최종화 PD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건물서 스스로 떨어진 사내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관악지부는 60명의 조현병 당사자의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취재진이 이곳을 찾은 날엔 환자들의 체험수기 발표가 있었고, 그중 20년째 투병 중인 김용규(가명) 씨의 사연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스물여섯, S그룹에 합격한 김 씨는 신입사원 연수 중 연극에서 개 역할을 맡게 됐다.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역할을 김 씨가 자원한 것. 헌데 연습 도중에도 그랬지만 연극을 마친 뒤에도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고, 그 여파로 결국 입사를 포기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후 H그룹 계열사에 재취업한 김 씨는 종종 아버지 차를 몰고 출근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뒤에서 누가 추격하는 느낌을 받아 불안에 시달렸다고 했다. 결국 조직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고심 끝에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병원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고 집에서 지내던 그가 약을 며칠 거른 어느 날, 김 씨는 집 밖으로 외출해 3박 4일간 쉬지 않고 걸었다. 산속을, 계곡을 쉼 없이 가로지르던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하면 집에 갈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음에도 전철을 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만 같고, 버스를 타도 집을 찾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자신을 지배했다고 했다. 다치면 비로소 119 구급대가 나를 집으로 데려다줄 거란 판단에 그는 곧장 건물 2층에서 뛰어내렸고, 병원 입원 후 마침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해와 진실] 알지 못해 두려운, 조현병의 진실 당초 정신분열증으로 불리다 2011년 새롭게 명명된 '조현병'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듯 신경계 혹은 정신의 튜닝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아 마음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질환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병명이다. 현재 조현병 환자의 수는 10만7662명으로 집계됐으나 전문가들은 5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 = getty image bank


현악기의 줄을 고르듯, 망가진 신경의 조율을 바로잡는


조현병의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으로 조선 중기 승려 휴정이 쓴 선가귀감에 나온 조현지법(調絃之法)에 착안, 신경계 혹은 정신의 튜닝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아 마음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질환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로 2011년까지는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다.


원인은 현재까지 분명하게 규명되지 않았으나 의료계에선 주원인으로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의 균형 이상과 유전적 소인 등을 지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발병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전문가들은 조현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며 꾸준한 약물치료 및 재활프로그램을 통해 증상을 회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유병률이 1%에 달하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강퍅한 사회 인식 탓에 환자 본인이 이상 증상을 보이더라도 이를 가볍게 넘기거나 감추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체험수기 발표에 참석한 오영수(가명) 씨는 강제입원에 대한 아픈 기억을 털어놨다. 가족에 의해 열 차례 넘게 강제입원을 경험했다는 오 씨는 “그렇게 병원을 오가느라 제대로 된 사회생활, 인간관계 한 번 맺지도 못하고 청춘이 다 지나가 버렸다”며 “우울감, 불면증 등의 증상이 지속된다면 하루빨리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으라”고 읍소했다. 두 증상은 조현병의 대표적인 전조증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프로그램을 진행한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사회복지사 최지영 씨는 “조현병 환자의 경우 증상이 나타나도 본인은 판단을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주변의 관심과 꾸준한 약물치료, 재활 프로그램을 병행한다면 조현병도 당뇨나 감기처럼 증상이 점차 완화되는 질환이므로 막연한 공포 대신 따뜻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오해와 진실] 알지 못해 두려운, 조현병의 진실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씨. 그가 조현병 환자임이 알려지며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공포가 더욱 확산된 바 있다.


이에 반해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더 깊고 선명해지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2008년 발표한 정신보건관련 사회적 낙인에 대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설문자의 52.5%가 조현병 환자의 타해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고, 65.8%가 조현병 환자는 예측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사회홍보활동과 의학적 지식이 제공됐음에도 이러한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발표에 따르면 2017년 조현병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12만70명으로 확인된 반면 정신질환자 사회복귀시설은 2016년 기준 전국 336곳으로 시군구별 평균 한 곳꼴로 운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현병 환자에게 보이는 폭력성에 대한 논문을 쓴 최준호 한양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조현병 치료에는 약물복용과 지속적 병원 방문 등 온정적 환경의 제공이 필요하나, (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병원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이로 인해 재발을 경험하고 이내 만성화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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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려는 찰나, 구석에서 체험수기를 경청하고 있던 강지훈(가명) 씨가 필자를 붙잡았다. 기사에 이 말, 이 한 줄은 꼭 넣어달라며 그가 반복해 토해낸 말은 “우리는 죄가 없어요” 였다. 지난달 31일 발생한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을 계기로 다시금 조현병을 향한 비난과 성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 순간, 여론은 다시금 이 모든 원인을 범인이 앓고 있던 조현병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부정인식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최종화 PD final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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