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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반성문/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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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열심히 쓰는 이들은 많고
나는 요즘 쓰지도 못하니
뭐라도 해야 한다면
반성문을 잘 쓰고 싶다
어렸을 땐 한 번도 반성하는
반성문을 쓰지 않았다
나이 들어선 아예
쓰지 않았다
두 눈을 똑똑히 감고
내가 뭘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아니,
무엇을 했는지 금세
잊어버렸다
사는 게 어려서 쓰던 반성문을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서
꺼내 읽는 일 같을 때
고쳐 쓰고 고쳐 쓰는 일 같을 때
하얗게 정신을 차리고,
잘한 일 잘못한 일을 잘
말해 보고 싶다
내가 지금 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건지나
한번 잘 써 보고 싶다

[오후 한 詩]반성문/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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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간명하다. 반성 좀 하고 살자는 것이다. 아니 "내가 지금 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건지나"라도 제대로 알고 살자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렇긴 한데 이런 괜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반성문의 원본이라 할 수 있을 어렸을 때 쓴 반성문이 실은 "한 번도 반성하"지 않은 상태의 것이라면 그것을 지금 와서 "꺼내 읽"고 "고쳐" 쓴다 한들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객쩍은 질문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의심은 원리주의자의 매몰찬 편집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생에 원본이라 할 수 있는 게 어디 따로 있겠는가. 그리고 아무리 "고쳐" 쓰고 재삼 반성한다고 해서 완벽해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런 맥락은 문득 시 쓰기, 그것과 겹친다. 반성의 지속은 윤리와 내면을 갱신하고 창조한다는 의미에서 이미 시적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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