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박충훈의 돛단Book]30년간 사이 나빴던 친구와 화해하는 법

시계아이콘02분 50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뉴스듣기

14년만에 재출간된 책 '적과의 대화'

미국-베트남 관계자들 모여 과거 전쟁 복기
전쟁 중단 기회 놓친 이유 주제로 날선 논쟁
3박4일간 토론의 교훈 '끝없는 대화 필요해'
[박충훈의 돛단Book]30년간 사이 나빴던 친구와 화해하는 법
AD

세계적인 포크 가수이자 반전 운동가 존 바에즈는 1972년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미국과 분쟁 중이던 동남아시아 국가를 돌며 전 세계를 상대로 반전 메시지를 전파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의도와는 반대로 미국은 1972년 12월18일부터 12일간 하노이와 주변 지역을 상대로 이른바 '크리스마스 폭격(작전명 '라인 브레이커')'을 감행했다. 꿈쩍 않고 버티는 베트남을 협상 테이블까지 끌어오기 위한 겁 주기 전략이었다. 바에즈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자신이 묵던 호텔에서 나와 '통붘호텔'의 방공호로 대피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겁에 질린 피난민들과 함께 '우리는 승리할 거라네(We shall overcome)'라는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생존과 평화를 기원하는 고대 제사장의 주문처럼 노래는 어두운 방공호 안에 울려 퍼졌다. 크리스마스 폭격에서 미군은 약 4만t의 폭탄을 퍼부었지만 땅굴 생활이 일상화된 베트남인들에게 별 피해를 주진 못했다. 사상자는 1300여명에 불과했다. 1년 후 미국은 파리 평화 협상을 통해 현지에서 완전 철수하기로 결의했다.


크리스마스 폭격이 있었던 해로부터 25년이 지난 1997년, 존 바에즈가 피신했던 호텔에서는 그간 상상할 수도 없었던 만남이 성사됐다. '메트로폴 호텔'로 이름을 바꾼 이곳에서 베트남전을 이끌었던 미국과 베트남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대화의 장을 연 것이다. 전쟁 당시 미국의 국방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 북베트남의 외무부 차관이자 미국과의 비밀 협상 사령탑을 맡았던 응우옌꼬탁이 양측의 대표로 나섰다. 이 밖에 군사ㆍ외교 담당자와 역사학자 등이 각 13명씩 참여해 3박4일간의 대화를 시작했다. 모임의 타이틀은 '기회를 놓쳤는가?(Missed Opportunities?)'로 정했다. 말 그대로 베트남 국민 300만명, 미군 5만8000명(각 정부 추산)의 생명을 앗아간 전쟁을 도중에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진 않았는지 되새겨보는 자리였다.


최근 14년 만에 국내서 재출간된 '적과의 대화'는 일본 NHK 에디터 출신의 국제 관계 전문가 히가시 다이사쿠(현 日 조치대 교수)가 '기회를 놓쳤는가?' 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소개한 책이다. 1998년 다이사쿠는 이때의 만남을 소재로 전쟁 특집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 - 베트남 전쟁ㆍ적과의 대화'를 제작했다. 저자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모은 대화 기록과 참여했던 인물들의 인터뷰, 막전막후의 숨은 이야기들을 정리해 책으로 엮었다.

대화의 시작은 그리 매끄럽지 않았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는 여전했다. 미국 측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점차 확산하는 '도미노 이론'에 공포감을 느꼈기에 전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베트남 측은 공산주의가 서방 세력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의 연장선이었을 뿐 공산주의 자체의 확대를 위한 싸움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양국 간 비밀 평화 협상이 결렬된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바가 서로 너무나 달랐다. 베트남 측은 "북베트남에 폭탄을 쏟아부으면서 한편으론 (비밀 협상) 대화를 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미국 측은 "북폭의 계기는 북베트남의 선공격 때문이었고, 본국에 폭격을 중단할 것을 거듭 제안했다"며 "베트남이 협상에 비협조적이라 폭격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양측은 '베트남이 어느 이념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 국가로 남았다면' 혹은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후반 양국 간 비밀 평화 협상이 제대로 진행됐으면 어땠을까' 등 전쟁의 장기화를 막을 수도 있었던 과거의 기회들을 복기한다. 그 결과 그들은 서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모자랐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비밀 협상에 깊이 관여했던 모임 참석자 체스터 쿠퍼는 "나는 중국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몰랐음에도 2차 대전 때 병사로 중국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사이엔가 아시아 전문가로 간주됐다"며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이해도가 실은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음을 고백했다. 오해가 이해로 바뀌는 순간, 모든 갈등의 원인이 자신의 무지와 억측이었다는 반전이 기다린다.


[박충훈의 돛단Book]30년간 사이 나빴던 친구와 화해하는 법 1967년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 앞에 설치된 지하 방공호에 주민들이 숨어 사태를 주시하는 모습.(VN익스프레스 캡처)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이들의 대화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특히 북한 핵 문제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해 커다란 교훈과 시사점을 제시해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당시 미국과 베트남의 대화에선 현재 북ㆍ미 간 비핵화 협상과 비슷한 점이 보인다. 북한과 베트남은 미국식 도미노 이론에 영향을 받은 나라들이다. 프랑스와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다가 독립을 전후해 이념 전쟁에 휘말린 약소국으로서, 줄곧 '적'이었던 미국과 대화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국의 경제적 발전이 과거의 갈등에 우선하는 때다. 이 책에서도 베트남이 미국과의 대화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자국의 경제적 발전을 위한 외무부의 의도가 있었음을 전제한다. 미국으로부터 최혜국 대우를 받아내는 것을 포함해 미국과 베트남의 경제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전략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서 얻어내려는 것도 다르지 않다. 공감대가 있는 만큼 참고할 점도 분명해 보인다. 책에 묘사된 맥나마라의 열린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기회를 놓쳤는가?' 모임 직전 그는 베트남전 당시 최고사령관이었던 보응우옌잡을 만났다. 형식적인 대화가 오가다 만남이 파할 때쯤 맥나마라는 수십 년간 풀리지 않던 의문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보응우옌잡에게 '통킹만 사건(베트남이 미 구축함 매독스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미군이 반격에 나선 사건으로 베트남전이 본격화한 계기)' 당시 베트남이 정말 미국을 공격했는지를 물었다. 보응우옌잡은 "공격하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이라고 답했다. 맥나마라는 후에 '회고록'의 개정판을 내며 통킹만 사건에 대한 보응우옌잡의 대답을 더했다. 베트남 측의 증언을 역사적 사실로 존중한다는 자세를 보여준 것이다.


맥나마라는 모임이 끝나고 진행된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전은 지도자들이 현명하게 행동했다면 피할 수 있었다"며 "적을 이해하며 최고 지도자끼리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게을리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맥나마라와 보응우옌잡이 오늘날의 북ㆍ미 간 대화를 본다면 같은 조언을 하지 않을까.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라, 그것만이 국민과 나라가 살 길이다."


AD


(히가시 다이사쿠 지음, 서각수 옮김/원더박스/1만5000원)

[박충훈의 돛단Book]30년간 사이 나빴던 친구와 화해하는 법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1510:17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도축·가공 현장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경남권의 핵심 거점인 부경양돈협동조합 통합부경축산물공판장과 대전·충남권의 대전충남양돈농협 산하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생산성과 위생, 환경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국내 축산물 경쟁력 강화의 실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공판장의 역할이 단순

  • 25.12.1209:58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제주 축산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제주 한라산바이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가축분뇨를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전환하며 지역 축산업의 환경 기반을 바꾼 시설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약 55만~60만마리의 돼지가 사육되며 하루 2500t 가까운 분뇨가 발생하는데, 한라산바이오는 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자원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분뇨가

  • 25.12.1108:51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자유무역협정(FTA) 국내 보완대책을 통해 설립된 '충주 거점 산지유통센터(APC)'는 단양과 제천, 음성, 괴산 등 충북 북부권에 위치한 농가 650곳에서 생산한 사과를 세척·선별·포장·출하하는 과실 전문 APC입니다. 생산단계부터 관리하고 사과 브랜드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저온저장고와 선별기 등을 통해 비용을 줄여 농가엔 더 큰 수익을, 소비자들에겐 품질 좋은 사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 25.12.1010:18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59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축산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국내보완대책 가운데 하나가 '조사료생산기반확충 사업'이다. 조사료는 볏짚이나 목초 등 거친 섬유질 위주의 사료로, 이 사업을 통해 국산 조사료의 생산·유통·가공 기반을 갖춘 지역 단위 가공·유통센터가 확충되면서 국산 조사료 품질과 시장 신뢰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전주김제

  • 25.12.0909:11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올해 3분기 기준 한국은 22개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해 59개 국가와 FTA를 활용한 무역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첫 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4월 이후 약 21년 5개월 만의 성과다. 정부는 현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85% 수준인 FTA 네트워크를 글로벌 1위인 90%까지 더 넓고 촘촘하게 확충할 방침이다. FTA 네트워크 확대에 따라 한국의 수출 시장이 넓어진 만큼 수출액도 2004년 2538억달러에서 2024년 6836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