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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의 책 한 끼]한국여성 정치 진출, 왜 제자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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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 / 드루드 달레룹 / 현암사 / 1만3000원


[김효진의 책 한 끼]한국여성 정치 진출, 왜 제자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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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줬다. 124년이 흐른 2017년을 기준으로 세계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23%였다. 1997년에는 11%였으니 최근 20년 사이에 두 배로 늘었다. 여성 국회의원이 10% 미만인 나라는 20년 전 109개였는데 지금은 35개 밖에 안 된다.


'뉴질랜드 이후'의 124년이라는 시간을 감안하면 지난 20년은 분명히 드라마틱한데, 드라마가 끝날 무렵에 이야기의 기세가 한 풀 꺾이고 말았다.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교 정치학부 교수인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2013년 평균 1.5%였던 세계 여성 국회의원의 증가율은 2015년 0.5%로 감소했다. 그래서 저자는 "여성의 대표성이 작은 소수(10~25%)에서 거대 소수(25~40%)가 될 듯했으나" 그러질 못했다고 안타까워한다.

인구비율로 따지면 남녀는 일대일이다. 저자가 말한 '거대 소수'의 최고점, 즉 '여성 국회의원 40%'라는 지점은 인구비율을 반영한 '여성 국회의원 절반'의 목전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결론은, 아직 턱없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124년 전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질서를 움직인 보편체제는 민주주의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을 들였는데도 인구비율을 온전하게 반영한 정치구도를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라는 제목은 이 같은 저자의 질문이자 의심이다.


현대의 선거제도가 성(性) 중립적이지 않다는 판단은 비교정치 연구 대상이 되는 많은 나라의 정치구조를 고려할 때 수긍할 여지가 있다. 정치 영역에서의 남성 기득권은 어떤 선거제도를 쓰느냐에 따라 완화될 수도, 더 단단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를 가동하는 나라에서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25%다. 단순다수대표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19%에 머문다. 비례제와 단순다수제를 혼합한 나라는 22%로 중간이다. 비례제는 여성을 포함한 정치 신인이나 중앙정치무대로 진출하려는 정치적 소외ㆍ취약계층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이 열려있다.


피선거의 주체, 즉 정당이 후보자의 리스트를 고안하기 나름이거나 비교적 낮은 대표성만으로도 그만큼의 의석을 분배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의 교체율도 비교적 높다.


반대로 단순다수제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의 프리미엄이 세고 남성 기득권이 더 공고하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성추문에 휩싸여 정계를 떠난 존 코니어스 전 민주당 하원의원(당연히 남성)은 27선을 했다. 미국 하원 의원의 임기는 2년이니 우리로 치면 13~14선쯤 된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정치의 비밀 정원'이라는 개념을 언급하며 "유권자들은 어떻게 이 후보들이 선발되었는지 속사정을 자세히 알 수 없다"고 지적한다. 공천 과정의 불투명성과 예비선거의 부재가 남성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일정하게 부추긴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여기에는 '결과적 오류'가 있는 듯하다.


저자가 제시한 비례제 국가들에선 정당의 내밀한 공천제가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다. 반대로 미국에는 공천이라는 개념이 없고 예비선거가 존재한다. 여성의 정치참여를 가로막고 남성 기득권을 공고하게 만드는 데는 공천 시스템의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는 해석이 저자가 제시한 팩트를 기준으로 볼 때 오히려 합당하다.


이처럼 작은 의문을 유발하지만, 비례제와 단순다수제를 거론하고 이념의 문제로 연결 짓는 건 설득력이 있다. 여성 정치참여의 또 다른 척도인 여성의 당원 비율에 관한 얘기다. 독일의 진보 정당인 사회민주당과 좌파당, 녹색당의 여성 당원 비율은 각각 42ㆍ56ㆍ56%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기독민주당과 기독사회당의 여성 당원 비율은 25%로 낮다.


영국도 비슷하다. 노동당의 여성 당원 비율은 43%, 보수당의 여성 당원 비율은 21%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진보 정당인 노동당의 여성 당원 비율은 41%, 보수 정당인 우파연합의 여성 당원 비율은 17%로 차이가 제법 크다.


종합하면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를 운용하고 진보정당이 유의미한 힘을 지녔거나 이미 진보적인 나라에서 여성의 정치참여율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도식을 세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최근 몇 년 간 유럽에 불어 닥친 보수ㆍ극우의 바람이 저자가 말한 '여성 대표성의 거대소수화'를 조금은 방해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비례대표제를 일부 가동하고 여성할당제까지 채택했는데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7%에 불과하다. 저자가 세계적으로 아주 낮은 축으로 잡은 19%에 못 미칠뿐더러 아프리카의 르완다보다도 낮다. 기초자치단체장 중에는 4%, 광역의회에서는 19%만이 여성이다. 여성 광역자치단체장은 한 명도 없다.


여성 참정권의 역사가 빈약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지난 70년 동안 19번의 대통령 선거와 20번의 국회의원 선거, 10번의 지방선거에 직접 참여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1948년 반쪽 국회에서 겨우 몇 걸음 더 나아갔을 뿐, 70년의 시간차를 고려하면 여성의 정치참여는 거의 제 자리 걸음에 가깝다"고 말한다.


비례제의 비중이 전체 의석의 20%도 안 되는 데다 여기에 대해서만 여성할당제를 적용하니 큰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제도권 내 유일한 진보정당인 정의당의 의지만으로 '남녀 동수정치'를 얘기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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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의 책 한 끼]한국여성 정치 진출, 왜 제자리인가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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