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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사이먼 래틀과 런던 심포니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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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사이먼 래틀과 런던 심포니의 미래 사이먼 래틀 (C) Tristram Ken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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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심포니(LSO)는 늘 감독 교체와 함께 변혁을 기대한다. 오랜 객원 생활 끝에 LSO 수석 지휘자에 오른 지휘자는 전임 감독과 비교되고, 본인의 장기가 LSO에 어떻게 접목될 것인가 기대를 밝히는 런던 정론지 인터뷰를 갖는다. 오페라에 대한 관심대신, 드뷔시, 라벨, 프로코피예프, 스트라빈스키부터 아이브스, 러글스에 이르는 20세기 아방가르드에 폭 넓은 장기가 있던 지휘자는 “20세기 음악으로 오늘의 현실을 마주하자”고 했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와 프롬스 참가로 “악단의 비르투오시티를 펼치자”고 역설했다.

언뜻, 2018년 사이먼 래틀의 이야기 같지만, 1988년 LSO 11대 수석 지휘자에 오른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취임 전 펼친 비전이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LSO의 역사는 반복된다. 지금이야 래틀이 수장이지만 10년 후의 LSO를 점쳐본다면, 바비컨센터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수석 객원지휘자군들, 특히 잔안데레아 노제다와 프랑수아 자비에 로트의 행보를, 파리 오케스트라와 결별할 다니엘 하딩의 거취와 함께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역사의 정-반-합 과정처럼 LSO 수장은 결국, 말러에 특장을 지닌 마에스트로가 합을 이루고 포스트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교향곡은 세계를 담아야 한다”는 말러의 주장처럼 ‘클래식 수도’ 런던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를 넘어, 축구로 치면 UEFA 챔피언스리그 4강권에 LSO가 늘 머물기 위해 악단 수뇌진은 말러를 신중하게 사용할 수 밖에 없다. 과거 수석 지휘자직을 허락하며 밀월 관계를 나눈 LSO와 아바도 사이가 벌어진 것도 말러 사이클을 대하는 양자의 관심이 달랐기 때문이다. LSO에서 오랫동안 수석 트럼피터를 맡은 모리스 머피는 “우리는 아바도를 위해 말러 전곡에 힘썼지만 그는 늘 다른 악간들과 말러를 녹음했다. 둘째나 셋째 아들 취급을 받는 기분이었다”라고 술회했다.

2018/19 시즌 LSO 라인업에서 말러 교향곡을 관장하는 지휘자는 하이팅크, 래틀 뿐이다. 17/18 시즌은 비치코프, 알솝, 16/17시즌엔 노제다, 자비에 로트, 하딩이 래틀 이외에 LSO의 말러를 제어했다. 1986년 LSO 부임 2년 전에 틸슨 토머스도 말러 3번 레코딩으로 사실상의 오디션을 마쳤다. 2018/19 시즌 LSO는 놀랍게도 소프라노로 익숙한 캐나다 지휘자 바바라 해니건에 하이든 86번 지휘도 맡겼다. 런던 필, 필하모니아와도 좋은 관계를 맺은 해니건은 이제 콜로라투라로 정점을 지났고, 활동 비중을 지휘로 옮기고 있다. 더 이상 말러 4번의 성악가에 머물지 않을 의지는 19/20시즌부터 개시될 스웨덴 예테보리 심포니 수석 객원 지휘 활동과 레퍼토리를 통해 보다 뚜렷해질 것이다. 베토벤과 말러에 공을 들이지 않는 감독급 지휘자가 있던가?


2005년부터 LSO 행정감독을 맡은 캐서린 맥도웰의 퍼포먼스는 여러 면에서 귀감이 된다. 발레리 게르기예프-사이먼 래틀로 이어지는 21세기 최고의 지휘 스타들을 LSO가 자산으로 품도록, 감독의 이취임을 무리 없이 마무리했다. 단순히 여성 CEO가 오케스트라를 관리하는 겉으로 보기 좋은 그림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행정감독의 말을 신뢰하고 이를 따르는 게 궁극적으로 개인과 조직에 이득이라는 합의가 15년 가깝게 이어진다.


맥도웰은 고전과 컨템포러리에서 기계추처럼 오락가락하는 LSO의 성격을 탄력성으로 무장해 마케팅에 나섰다. 디지털에 투자하기 위한 자금은 공격적인 투어로 마련했고, 2010년대 초반부터 아시아투어도 급증했다. 중국 시장에 대한 현명한 이해로 레인우드를 비롯해 중국 기업의 악단 직접 후원이 잇달았다. 게르기예프 시절 든든한 펀딩축을 이룬 요코 체스키나 여사의 작고 이후에도 BMW를 끌인 덕에 트라팔가 광장의 야외 공연은 꾸준히 이어진다.


매년 7월말 보고하는 전년도 LSO 재정보고서에는 이사회 의장 가레스 데이비스가 서명하고 맥도웰이 부서한 수입 지출이 공개된다. 자선과 기부의 혜택 차이가 명확하고, 후원과 스폰서의 현금 흐름을 보면, 이보다 더 환상적으로 굴러가는 오케스트라 조직은 유럽에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필하모니아가 장기 집권한 데이비트 웰튼을 대신해 2017년 영국 예술위원회(ACE) 출신의 헬렌 스프로트를 새 단장으로 영입했지만 공적 자금을 악단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는 비율만 봐도 두 사람, 조직의 역량 차이는 극명하다. LSO를 런던 필하모닉, 필하모니아와 묶거나 동렬 비교할 때 보인 LSO 단원들과 행정 스태프의 반응에서 악단의 프라이드가 느껴진다.


[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사이먼 래틀과 런던 심포니의 미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C) Ranald Mackechnie


래틀은 브렉시트와 전용홀 건립의 난제를 안고 LSO 임기를 시작했다. 니콜러스 케니언 바비컨 센터 행정감독이 아무리 ‘래틀은 게임 체인저’라고 칭송해도 이해 관계자들이 래틀에 거는 기대가 과도하다. 영국의 음악 교사들은 래틀이 음악 교육 예산 확충에 사회적 발언을 강력히 내놨으면 하고, 흥행업자들은 런던 주재 공연장에서 열리는 공연의 판매고가 래틀 컴백 덕에 덩달아 신장되기를 희망한다. 청중들은 베를린 필 같은 소리를 바비컨센터에 내놓으라 요구하고, LSO 단원들은 래틀의 희망대로 리허설 시간을 늘리면 음악은 좋아지겠지만 본인들의 급료는 어떻게 되는지, 슬슬 견제구를 날린다. 버밍엄 심포니 시절, 콘서트홀을 신축하고 현대음악을 보급하는 그 방식을 런던에 적용하는 건 무리라는 걸 래틀 스스로 잘 안다.


2017/18 시즌의 성과를 보면, 래틀과 LSO의 브랜드를 묶어서 특정 레퍼토리를 제시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이들이 팀을 이룬 활동 자체부터 대중의 관심을 환기했다. 2015년 3월 LSO 음악감독직 수락 이후 취임 전까지 2년 6개월 동안 LSO는 디지털화를 준비했고 그에 맞게 신규 인력을 확충했다. 래틀이 베를린 필 재임기간 일군 최대 업적이 무엇인가를 관찰한 공연예술계 핵심 인재들이 악단 발전을 위한 컨설팅에 참여했고, NT Live·사우스뱅크센터·코벤트가든에서 축적된 IT기술이 향후 LSO의 이노베이션을 추동할 것이다. 60대에 접어든 래틀도 과거와 달리,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만한 강경 발언을 이어간다.


지난 시즌, 달라진 래틀 시대를 극명히 보인 포맷은 ‘하프 식스 픽스(Half Six Fix, 이하 HSF)’였다. 7시 30분이나 8시에 시작되는 정규 공연과 달리, 6시 30분에 시작해 중간 휴식 없이 1시간 정도에 공연을 끝내는 새 프로젝트다. 초저녁에 공연을 시작해도 최다 관객층인 시니어들이 바비컨을 찾는 데 무리가 없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공연장에 대학생 관객을 유치하려는 시도다. ‘외로움’ 담당 장관을 두면서 노년층의 사회적 단절 해소를 강구하는 영국 현실을 래틀과 LSO는 HSF로 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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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F의 효과는 기대 밖의 영역에서도 나타났다. 미처 베를린 필하모닉 협연자로는 서기 어려웠지만 영국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다양한 가수들과 기악 연주자들이 HSF의 흥겨운 분위기에 편승해 래틀과 인연을 맺고 런던 시장을 살찌웠다. 브렉시트로 ‘클래식의 수도’라는 아성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음악가들이 래틀과 연대할 공간이 HSF 덕에 늘었다. 래틀은 HSF 포맷에서 탈권위와 자유로 한껏 가벼워졌다. 베를린과 달리 친구들에게 영어로 된 농담을 제대로 쓸 수 있어서 기쁘다는 진심이 관객에 전달됐다.


글 한정호 (객원기자, 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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