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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서울에서 평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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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대학생이던 1999년 여름 쯤이었을 것이다.


풍물, 노래, 문학, 영화, 사회과학 동아리 사람들이 거국적으로 모이는 자리가 마련됐다. 동아리 연합을 만든다는 취지였다. 대략 30명 정도가 강의실 책상을 밀어내고 빙 둘러앉았다. 주종은 막걸리, 안주는 떡볶이, 순대, 머릿고기 등이었다.

분위기는 서먹서먹했다. 나름 의미가 큰 자리였고 평소 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꽤 많았다.
분위기를 띄운 주인공은 91학번 선배였다. 92학번까지는 종종 볼 수 있었으나 91학번부터는 멸종한 공룡 마냥 보기 힘든 때였다.


선배 한 명이 예우를 갖춰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다며 91학번 선배를 소개했다. 91학번 선배는 소개를 받을만한 사람은 아니라며 간단히 자기 소개를 했다. 후배들은 짖궂었다. 대선배에게 노래를 요구했다. 서먹한 분위기를 띄워달라는 요청이었다.

91학번 선배가 부른 노래는 '서울에서 평양까지'였다. 처음에는 애들(?) 앞에서 무슨 노래냐며 빼는가 싶더니 이내 왕년의 가닥이 나왔다. 91학번 선배는 좌우로 몸을 돌리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는 등 율동까지 결들이며 거의 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후배들 앞에서 재롱을 떨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신이 난 91학번 선배도 흥에 겨워 2절까지 노래를 마쳤다. 이후 노래를 부른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분위기가 이미 충분히 띄워졌고 어느 후배도 감히 가왕(?)의 공연 뒤에 노래를 부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전까지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낯선 노래였다. 멜로디가 신나지도 않았고 '소련', '평양' 등이 들어간 노래가사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91학번 선배가 율동과 함께 부른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각인됐다. 강의실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들, 막걸리와 어울려 묘한 흥을 만들어냈다. '이 노래가 이렇게 신나는 노래였나'.


이런 감동과 흥은 직접 체험하고 느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노래가 만들어진 당시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은 5만원, 광주보다 더 가까운 곳이 평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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